수덕사修德寺
가는 길
난데없는 겨울
소나기라니,
일주문에 서서
비를 긋는다
산중엔 따로 울을
두르지 않느니
문안의 비와 문 밖의
비가 다르지 않아
바람은 빗물 따라
산을 내려가고
어둔 귀 하나
문설주에 기대어
저녁 법고소리를
기다리고 있다
시집『적막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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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은 사찰에 들어갈 때 첫 번째 세워진 문이다. 기둥이 한 줄로 서 있다고 해서 일주문이라고 부른다. 가람에 문은 문짝이 없다. 문은 공간 분할만하고 상징적일 뿐이다. 그리고 주변엔 울(담장)도 없다. 산중 사찰은 대부분 개방적이다. 불교는 오고 감에 자유자재 한다. 부처님을 여래라고 부르는 것 또한 이와 같지 않을까. 속세의 번뇌로 흐트러진 마음을 모아 한 마음으로 통하는 진리의 세계로 향하는 상징의 문. 일심을 깨달은 분이 부처요 잃은 자가 곧 중생이기에 일주문을 들어서는 구도자에게는 信心을 가져한다. 시인은 일주문에 서 있다.
한 줄로 선 기둥은 세속의 진애(塵埃)에 오염된 비뚤어진 마음을 떨쳐버리고 불법의 세계로 들어가는 의미이다. 그래서 ‘一心’을 뜻한다. 한마디로 此岸에서 彼岸으로, 사바의 세계에서 정토의 세계로 가는 첫 번째 문이다. 문 밖은 俗界이고 문안은 眞界라 하여 일주문을 들어설 때 一心에 귀의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시인은 덕숭총림 수덕사를 가는 길이다. 계절답지 않게 내리는 소나기, 비 그치기를 기다리며 일주문에 서 있다. 난데없이 내리는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온몸을 화두로 적신다. 그 순간 평소의 시선이 아닌 一心의 눈이 뜨인다.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고 보였던 것이 새롭게 보인다. 원래 없었던 울이 갑자기 보이고 쏟아지는 소나기가 문 밖과 안의 경계를 지우는 것이 보인다. 시인의 종교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신이라는 존재 유무의 벽을 깨부수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시인이기 때문이다. 종교가 설명이 아니고 체험이고 깨우침이라면 화자는 이미 종교적이다.
시인은 문설주에 기대어 저녁 예불 시간의 법고소리를 기다린다. 사찰에서는 북을 법고라고 한다. ‘법을 전하는 북’이라는 뜻이다. 북소리가 널리 울려 퍼지듯 불법의 진리로 중생의 마음을 울려 ‘一心’을 깨우친다는 의미이다. 붓다의 진리를 전하는 수단이다. 범종이 중생의 구원하는 상징성을 가진다면 법고는 길짐승을 제도하는 의미를 지닌다. 북의 양면은 암소와 수소의 가죽을 사용하는데 이는 음양을 맞추기 위함이다. 한마디로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은 소리, 화합의 소리, 조화의 소리이다. 중생의 심금을 울리고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할 수 있는 상징성을 띄는 四物 중 하나인 法鼓.
시인은 그 법고 소리를 기다리고 있다. 아니 두 개의 북채로 마음 ‘心’자를 그리며 두드리는 일심의 소리를 기다리는 것이다. 오래된 번뇌의 내의를 입고 겉옷만 바꿔 입는 우매함을 벗어던지고 심장을 후비며 파고든 법고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어둡던 귀를 열어 불법을 전하는 한 울림을 들으려고 한다. 그래서 한 마음을 깨닫고 마음의 눈을 떠서 어둔 귀를 밝히고 맑은 눈을 뜨려 하고 있다.
시인의 시집『적막한 말』에서 불교적 색채가 강하게 느껴진다. 시인은 이미 내면의 절간을 몇 채 허물고 다시 짓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깨달음이란 내 안의 성찰이고 기도이다. 설산 고행의 석가나 거친 황야에서 방황한 예수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서 표류하듯 우린 자신만의 고독한 섬 하나를 가지고 산다. 그래서 오는 외로움과 고독감을 어디에 붙들어 맬 수는 없을까. 때론 시인처럼 절간을 찾아 법고 소리에 매달아 허공에 띄우려고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잘 닦은 거울에 영혼을 비추어 성찰하는 행위이다. 집착을 벗어나 五蘊의 무상함을 깨닫자.
정적을 뒤 울리는
동심원의 파문
으늑한 절간에
티 없는 소리 공양
귀로 들으면 들리지 않고
마음으로 들어야 들리는
한 울림의 법고 소리
두드리는 자의 마음만큼 울리는
그 울림의 숲에서
온몸 비우며
진리 한 자락 휘감고 싶다.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홍영수jisrak@hanmail.net
수덕사 '법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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