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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다양한 생각과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간다. 얼마 전, 친구들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친구는 어떤 분을 우상처럼 여기면서, 그 사람의 권위와 전통에 절대적 믿음을 갖고 의지하며, 그 어떤 비판과 거부감 없이 그야말로 맹목적으로 맹신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자기만의 주체적 사상과 이론도 없이 무조건 추앙하는 그를 보면서 순간 베이컨의 ‘극장의 우상’론이 떠올랐다.
익히 알고 있는‘아는 것이 힘이다.’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이다. 살아가는 주변의 세계를 관찰하고 발견해서 제대로 된 상황을 인식해야 진정한 힘이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면서 네 가지의 우상의 오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극장의 우상’, ‘동족의 우상’, ‘종족의 우상’, ‘시장의 우상’이다.
고등학교 때다. 이른 새벽, 인적이 끊긴 도시의 주변을 걷는데 어디서 애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섬뜩한 느낌이 들어 그 장소를 빨리 피하고 싶었지만, 누군가 애를 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가만가만 가 보았다. 아뿔싸! 고양이가 쓰레기통 옆에서 우는 울음소리였던 기억이 난다.
그때 상황을 가져와 ‘극장의 우상’의 예를 들어 보자. 극장 무대 위 공연에서 소리에 관한 권위 있는 자가 그 고양이 울음소리를 녹음해 관객에게 들려주고, 잠시 후 진짜 애의 울음소리를 무대 뒤에서 아무도 모르게 들려준다고 해도 관객은 전자를 믿을 것이다. 그것은 소리 전문가의 권위와 명성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그 어떤 비판도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떤 권위와 명성에 대한 믿음 때문에 객관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극장의 우상’이라고 한다. 특히 문학, 예술 분야에 형성된 줄 서기 또한, 계보 등에서 보듯 권위에 기대고 명성에 기대어 최고인 양 믿고 우상화한 오류를 말한다.
그리고 ‘동굴의 우상’은 개인의 편견과 기울어진 시각으로 동굴 속에 갇혀 세상을 바라보는 독단적인 생각, 습관, 성격으로 판단하는 오류를 말한다. 사람마다 각자 다른 관점과 기질, 또는 교육 등에서 오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것은 자신의 입장이 고착화 되어 자기만의 동굴에 갇힌 상태이기에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장자의 글에 ‘우물 안 개구리(井底之蛙)’도 마찬가지이다.
등산을 좋아했던 필자는 높은 산들의 정상에 올라설 때가 많았다. 그러나 어떤 등산객은 신체적, 정신적 이유로 등산하지 않고, 싫어하고 올라야 할 가치를 못 느낀다. 그러면서 정상을 오르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힘들게 정상을 오르냐고 한다.
이렇듯 자기만의 편견과 외고집에 묶여서 아님, 자기만의 동굴 안에 갇혀서 오르지도 못한 산 정상의 세계를 재단하고, 주관적 판단으로 등산의 왜곡된 세계를 낳는 경우가 있다. 이 또한, ‘동굴의 우상’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며 이것은 개인의 주관과 편견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자신만의 동굴 속에 갇혀 그 밖의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한 현상일 것이다. 자신만의 아집과 편견에 갇힌 동굴 속 세계의 삶을 벗어나야 할 이유이다.
‘종족의 우상’의 예를 보자. 친구 사이인 고양이와 소가 점심때 식당에 갔다. 덩치 큰 소가 작은 고양이한테 메뉴 선택권을 줬다. 고양이는 소를 의식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한 메뉴를 주문했다. 잠시 뒤 비린내가 심한 생선회와 생선찌개 두 그릇이 식탁 위에 놓였다. 이를 본 소는 화를 내면서 당장 주문 취소하라고 했다. 소에게는 생선이 먹을 수 없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소에게는 생선찌개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인 셈이다.
이렇듯 종족마다 생활 습관이나 사고의 능력, 감각, 본성 등이 각자 다르기 때문에 세상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도 당연히 다르다. 그리고 인간이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종족의 편견이 있다고 하더라도 ‘종족의 우상’은 바로 타파해야 할 오류임은 분명하다. 장자의 ‘제물론’를 보면 여희를 미인이라고 하지만, 물고기는 그를 보면 물속으로 숨고, 새는 하늘로 높이 날아오른다. 이처럼 선악, 미추 등등은 상대적 관점이고 견해일 뿐이다.
‘시장의 우상’은 시끌벅적한 시장은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기에 다양한 언어가 생겨난다. 시장은 한마디로 화려한 말 잔치와 선동과 속임수가 난무한 곳이다. 인간이 언어에서 생기는 편견과 능수능란한 언변으로 없는 것도 존재하게 큼 만든 장소가 시장이다. 그래서 의사 전달에 있어 언어 소통의 문제가 생기는 데 그 언어가 완전하지 않고 불완전하게 소통하는 데서 생기는 현상. 예를 들어 ‘무아無我’는 내가 없다는 뜻인데 ‘무아無我’라고 쓰고 읽고 말하는 순간 ‘무아’라는 그 무언가 있는 것처럼 들리는 현상이다.
이 네 가지 우상이 우리가 올바른 인식에 다가서는 것을 방해하는 커다란 장벽이다. ‘동굴의 우상’은 솔직하고 용기만 있으면 권위와 명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종족의 우상’은 자신의 목적을 취하기 위한 해석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한, 그러한 판단을 그르치지 않은가에 대한 생각을 돌이켜 봄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이렇듯 베이컨은 자신이 제시한 방법론을 통해 대영제국과 자신의 무궁무진한 영광의 꿈을 꾸었다. 우린 그의 방법론을 통해 다양한 시선과 다각도의 접근으로 세계를 대하고 우상을 타파하면서 사물을 제대로 인식하는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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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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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온 이미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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