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설날이면 추위가 정점에 이르는 때인데 인간의 무자비한 소비의 군불 때문에 삼한사온이라는 말은 이미 이상기후에 소멸하고 말았다. 출근길, 어떤 이는 코트 깃을 세우고, 그 곁에는 두꺼운 목도리를 휘두르고서 뭔가에 쫓기는 듯한 얼굴들이 시리디시린 도심의 거리를 걷고 있다. 저들의 걸어가는 표정엔 그 무엇과의 이음표가 없는 단절된 얼굴이다. 하나같이 홀로 걷는 걸음걸이엔 말 줄임표만 매달려 있다. 십수 년 살면서 보는 도시의 풍경임에도 새삼 엄동설한에 느끼는 감정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그리고 다시 한번 도시적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도시적인 삶이 힘들고 피곤해서 오는 것이다. - 시골의 삶이 쉽고 편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시골에 비해 도시에서는 사람들과의 관계 즉, 다양한 지연, 학연, 혈연과 사회적인 위치, 특히 돈과 권력과 명예 등에 얽히고설킨 욕망적인 관계 때문이다. 무엇 보다. 사람들과의 관계망에서 오는 의무감 때문에 더욱 피곤함을 느끼는데, 이러한 관계 맺음은 피상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진정성에 대한 의문과 헛껍데기 같은 도시적인 삶이 피곤할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바라볼 때, 우선 삶의 경쟁에서 올 수밖에 없는 협력과 공생의 배제와 억제, 그리고 오직 절대 승자의 욕망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오늘의 저녁 동지가 내일 아침이면 적이 될 수 있는 작금의 현실, 그것은 곧 그 어떤 인간적인 조건들 앞에서는 높은 위치에 있어야 직성이 풀리고 상대를 누르고 이겨야만 하는 관계에서 오는 것들이다. 양보와 협력의 미덕이 사라지고 뼈만 남은 앙상한 아류들 앞에서 어찌 공생 공존을 얘기할 수 있으며 희망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피곤할 뿐이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어찌하여 당신은 이런 진창 속을 지나가려 하시오? 당신의 발을 불쌍히 여기시오! 차라리 입구에 침을 뱉고- 돌아가시오.!” 라 했다.
진창 속 같은 도시, 물질 만능을 표상하는 도시의 문명, 황금과 권력 앞에 작아질 수밖에 없고 출세욕에 눈먼 자들 사이의 아첨과 감언이설이 난무하는 도시적 삶. 그래서 삶 자체가 초조해지는 삶. 참고 견딜 수 없어 조급증에 시달려 자신을 떠나 가파른 파멸의 길을 걷는 자들의 도시의 삶. 물론, 이러한 생각 자체가 그 어떤 노력과 끊임없는 도전 의식 없이 오직 도시의 문명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변인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자신의 변명처럼 들릴 수 있음 또한 사실이다.
이렇게 피곤함과 우울감, 좌절감 등에서 오는 비참함은 무엇보다 타인과 비교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교에서 오는 불행은 사실 나에게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자기의 삶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함에도 자꾸 타인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비록 자신의 위치가 낮고 어둡고 구석진 자리일지라도 때로는 주중에 먼 골프장 가는 대신 근처 둘레길을 미음완보(微吟緩步) 하면서 자신이 걷고 있는 삶의 의미를 읊조려 보고, 북적대는 공항의 해외 여행객을 바라보는 대신 가까운 유적지 탐방에서 역사의 한 페이지 속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이렇게 우아한 가난의 시선으로 자신을 뒤돌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비록 어려울지라도 거기엔 자신이 바라고 기대하는 지향점이 있지 않겠는가.
도시 문명 속 삶이 잔혹하고 때론, 찬란할지라도 나란 존재는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잊혀 가는 존재가 된다. 아니 잊히기 전에 이미 값싸고 천한 존재의 키치가 되었는지 모른다. 키치적 존재가 아닌 온전한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비록 피곤하고 욕망이 넘실대는 도시적인 삶일지라도 침을 뱉고 복수하듯 하지는 말자. 이러한 도시의 문명과 삶을 괄호 속에 묶어놓고 참나를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질문하자.
퇴근길이다. 삭풍에 휘날리는 눈발과 얼어붙은 도심의 풍경 사이로 조울증 걸려 있는 듯, 내일을 망각하는 듯이 외롭게 외로움을 타며 사람들이 퇴근하고 있다. 그 곁에는 높은 하늘마저 찌를 듯한 마천루의 모습들이 종횡대로 즐비하게 서 있고 그 사이사이로 움직이는 어두운 낯빛들이 더욱 외롭게 보인다.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게 아니라 소통이 없어서이다. 그곳이 곧 다름 아닌 도시의 사막이다. 그래서 고독하다.
시선은 갈 곳을 잃고
넋 나간 유령이 되어
한 알 한 알 감정을 떨어뜨리며
빌딩 숲속 미라가 미로를 걷고 있다.
무게와 부피와
육신의 껍데기마저 벗어놓고
기름기 빠진 관절로
작대기처럼 걷는다.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무겁고 지친 발걸음으로
한 무더기의 고독을 등에 지고
앙상한 영혼들이 걷고 있다.
_ 우음偶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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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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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osmiannews.com/news/269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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