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문학 칼럼

할머니와 몽땅 빗자루

홍영수 시인(jisrak) 2024. 9. 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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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칼럼] 할머니와 몽땅 빗자루 - 코스미안뉴스

며칠 전 고향 집에 갔었는데 여전히 토방 마루 구석진 자리에는 몽땅 빗자루 걸려있었다. 오랜 세월 쓸어 담고 담아내어 닳고 닳아서 반토막이 된 수수 빗자루다. 그 모습은 지금까지 몇십 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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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고향 집에 갔었는데 여전히 토방 마루 구석진 자리에는 몽땅 빗자루 걸려있었다. 오랜 세월 쓸어 담고 담아내어 닳고 닳아서 반토막이 된 수수 빗자루다. 그 모습은 지금까지 몇십 년 동안 함께했던 할머니의 빛바랜 머리카락처럼 기름기 빠진 모습으로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마루 구석진 곳의 녹슨 못에 걸려있었다. 평생 문지방 넘나들며 비바람이 슬어 놓은 먼지 알갱이를 쓸어 담던 할머니, 그 할머니의 지문이 닳아 지워져 가듯, 빗자루 또한 할머니와 함께 세월의 먼지를 쓸어내다 그 세월에 스스로 절반을 쓸어버리고 이젠 절반만 남아있었다.

 

평생 자식을 위해 헌신적이었던 할머니, 지금은 아홉 굽이를 돌아서서 안방도 토방 마루도 쓸 기력마저 점점 잃고 방 안에 누워있는 시간이 많다. 그 광경을 문틈 사이로 엿보고 있는 평생의 동반자 빗자루는 할머니의 따스했던 손바닥의 정을 그리워하며 절반은 닳고 남은 절반의 몸짓 언어로 기도하는 듯 묵상의 자세로 걸려있다. 닳아가면서 자신을 비운 빗자루는 평생 자식을 위해 다 내어주고 비워가는 할머니의 마음을 잘 알고 있듯이 할머니 또한, 꼭 움켜쥐었던 빗자루의 체온에서 한 핏줄 같은 정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요즘 할머니는 힘겹게 일어나서 마루를 나오실 때는 지팡이 손잡이처럼 굽은 등으로 습관처럼 녹슨 못에 걸린 빗자루를 움켜쥐고 좀먹은 마루판을 기어가듯 하면서 쓰는 때도 있다. 혹여 올지도 모를 자식과 손자들, 그들이 밟고 디뎌야 할 마룻바닥과 마루판 사이의 티를 티 나지 않기 위해 비질하신 것이다. 이럴 때면, 제 몫을 하게 된 빗자루는 혼신의 몸짓으로 구석구석 파인 곳에 쌓인 먼지 부스러기들을 끄집어내어 쓸어냈다. 그러면서도 할머니의 손에서 느끼는 변치 않는 정만큼은 절대 쓸어내지 않고, 오히려 꼬오옥 움켜쥐고 앞으로도 변치 말고 함께 하자는 듯 다시 제자리인 녹슨 못으로 되돌아갔다.

 

다시 한번 번갈아 가며 쳐다보는 할머니와 빗자루, 바래고 바랜, 닳고 닳은 몽땅 빗자루의 묵언 수행하는 듯한 표정과 홀로 외로워 홑이불처럼 가벼워진 몸과 깨물어 아픈 다섯 손가락의 그리움에 지친 침묵의 눈동자가 서로 닮아 있는 듯했다. 오랜 세월 무언의 대화와 약속하지 않은 약속으로 함께 살면 사물과 인간도 정으로 닮아가는 것일까? 닮아가는 저 모습을 얼마나 더 볼 수 있을까. 더욱 닮아가길 바랄 뿐, 그 무엇도 해 드릴 수 없는 난, 등 굽은 할머니와 닳고 닳은 몽땅 빗자루에서 굽음과 닮음에서 견딤의 숭고를 보았다.

 

스친 세월에 거칠어진 마루를 쓰는 빗자루라고 어찌 쓸어내는 아픔이 없겠는가. 허리 숙여 비질하다 기역 자로 굽은 등이 되신 할머니 또한 어찌 눈물이 없겠는가. 다만, 닳아가는 고통도 굽어지는 영혼의 아픔도 스스로 동여매면서 고통은 잊고 아픔은 묻고, 눈물은 삼키면서 동반자적 동지애의 헌신적 삶의 철학을 실천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한 몽땅 빗자루와 할머니에게서 난 헌신비움이라는 두 단어를 온몸에 문신처럼 새겼다.

 

보고픈 마음 비우고 살지라도 자식에 대한 그리움은 비켜 갈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갈수록 야위어 가며 거동하기 힘드신 모습으로 누워 계시지만, 할머니의 자식에 대한 그리움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외로움의 깊이는 상처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지금도 방 안에 누워계실 할머니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 어쩜, 몽땅 빗자루는 사립문을 열고 들어올 자식들을 위해 스스로 마루판을 쓸고 있을 것이다. 할머니! 당신은, 저에게는 지금도 뜨거운 심장입니다.

 

몽땅 빗자루/홍영수

 

 

깔끔한 툇마루 끝에

쓸어 담다 닳고 닳아 시린 아픔 하나 있다.

녹슨 못에 걸려있는 때 묻은 손잡이엔

부엌 문지방 넘나들던 엄마의

지문 자국이 흐릿하다.

비바람 알갱이로 슬어 놓은 먼지와

자신의 온몸 닳아가며 남긴 티끌은

절반을 먼저 보내고 남은

반토막의 경전.

뒷바라지를 치마로 두르고

엄마를 저고리로 껴입은 채

허리 한 번 펴지 못하다

지팡이 손잡이처럼

절반으로 굽어 버린 기역자의 법열 등.

서로 다독이며

좀먹은 마루판 사이를

헐벗고 닳아가면서 비질하고 있다.

누군가 밟고 디뎌야 할

마룻바닥의 티를

티 나지 않게 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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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6회 최충 문학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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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땅 빗자루 실제 image', 사진 /홍영수 2016/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