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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명절을 맞아 지방을 쓰고 차례상을 차리면서 성인 된 두 딸에게 한자로 쓴 지방(紙榜)의 문자를 보여줬다. 그리고 성씨에 대한 본관과 몇 대 손, 훌륭한 업적을 남기셨던 선친들, 그리고 차례상을 차릴 때 올리는 음식의 순서와 지금은 간략하게 차리지만, 몇 대 거슬러 올라가면 더 많은 제사의 양식에 따라 지냈다는 등등 예전에 했던 얘기를 또다시 했다. 한참 동안 얘기해 주는데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것 같았다. 이 말을 듣던 아내가 주방에서 이것저것 준비하면서 혼자서 하는 말
“그냥, 조상님을 위해 차례상을 차리는 거야”
라고 단순명료하게 한마디 했다. 순간, 몇 분 동안 설명조였던 나의 얘기는 어디로 잘려 나가고 아내의 한마디만 남게 되는 묘한 느낌이었다.
우리가 어떤 현상을 얘기하고 설명할 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게 됨으로써 전하고자 하는 핵심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 말인즉슨 불필요한 가정이나 복잡한 논리 전개보다는 단순, 명쾌한 논리가 설득력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논리가 14세기 영국의 논리학자이자 프란체스코회의 수사였던 ‘오컴의 면도날(Ockham's Razor)’이 아닌가 싶다. 이 의미는 “어떤 설명을 할 때 불필요한 가정을 하지 말라”는 것, 똑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개의 논리가 있다면, 간단한 쪽을 취하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그렇게 필요하지 않은 가정은 모두 잘라낸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한 면도날은 필요하지 않은 가설을 잘라 내 버린다는 비유이다. 이 원리는 필연적이지 않은 개념을 배제하는 <검약의 원리(principle of parsimony>의 토대가 되었다.
어떠한 현상을 간단히 설명할 수 없어 복잡하고 장황하게 할 수밖에 없는 현상을 단순하고 간단하게 설명한다고 해서 상대를 이해시킬 수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또한,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것이 더 나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복잡한 설명이나 가정의 선택보다는 될 수 있으면 단순함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뉴턴도 말했다. “진리는 항상 단순함에서 찾아야 한다, 다양성과 혼란이 아니라” 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 또한, “단순함이 궁극의 정교함”이라고 했다. 이처럼 단순함에 대한 명제는 동서양 고금의 참된 진리가 아닌가 싶다.
오컴의 면도날에 합치된다고 해서 반드시 옳은 이론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 중에서 가장 간단하고 단순한 이론을 찾는 하나의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이유는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고 오직 현상에 관해서만 설명하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또한 개별적인 현상에 관해 설명이 잘 된 이론을 선택하는 것이지 일반적 현상에 대해 잘 설명하는 이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컴의 면도날’의 표현 방식에서 동일한 설명이 있다면 간단한 설명이 더 낫다“ 거나 ”불필요한 가정을 추가하지 마십시오“라는 의미이다. 한마디로 쓸데없는 요소를 제거하고 복잡한 설명보다 간단한 방법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라는 것이다. 때론, 서두에서 말했듯이 복잡하고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듯한 대화를 하거나, 어떤 현상을 설명하려고 할 때는 오컴의 면도날과 같은 설검(舌劍)으로 오류나 실수를 잘라내고 썰어버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럴 때 오류 가능성을 줄이고 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며 나타난 예술사조가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다. 미니멀리즘이란 ‘최소한도의, 최소의, 극소의’라는 뜻의“minima” 에 “ism"을 결합한 용어로 196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한 사조이다. 마찬가지로 미니멀 아트 (Minimal Art) 또한, 복잡하고 다원화된 사회에 대한 방향으로 나타난 예술사조로써‘최소한의 예술’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렇듯 미니멀리즘은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나타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절제된 표현 기법과 조형성 안에서 제한된 종류의 재료 등을 이용했다. 특히 우리에게도 익숙한 그의 ‘노출 콘크리트’의 사용은 그의 건축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요즘은 심플한 미니멀 패션에도 관심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과장된 형식에서 벗어나 예술의 본질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나타난 ‘단순함’에 대한 진리는 ‘오컴의 면도날’과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오컴의 면도날’과 ‘미니멀리즘(Minimalism)’, ‘단순함’ 등의 개념들은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차원에서 추구할 수 있는 개념들이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몸에 배어서 체화되고 또한 고도의 정신적 집약체들의 결과로 나타난 개념이기 때문이다. 어찌 처음부터 단순한 고귀함의 경지에 오를 수 있겠으며,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수 없는 노력과 번민, 고뇌의 시간이 얼마나 많이 필요했겠는가. 불필요하고 복잡한 것들은 면도날로 베어 내어 단순화하자. 그리고 그 높은 단계에 오르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을 하자. 그리고 어떤 행사나 모임에서의 인사말도 줄이고 줄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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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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