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문학 칼럼

틈새, 너와 내가 마주할 수 있는

홍영수 시인(jisrak) 2024. 10. 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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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칼럼] 틈새, 너와 내가 마주할 수 있는 - 코스미안뉴스

고등학교 다닐 때 3년 동안 자취를 했다. 방 하나에 학생 둘이 사용했기에 다소 좁았다.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창문을 책장이 가리게 되었다. 그런데 너무 답답하고 어두워서 불편을 느껴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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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다닐 때 3년 동안 자취를 했다. 방 하나에 학생 둘이 사용했기에 다소 좁았다.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창문을 책장이 가리게 되었다. 그런데 너무 답답하고 어두워서 불편을 느껴 어느 일요일에 책상의 위치를 옮겼다. 그 순간 창문으로 비추는 한 줄기 빛이 들어왔다. 처음으로 의 존재감을 느꼈다. 장자도 얘기했듯이 텅 빈 방의 문을 열거나 문의 틈새로 들어온 빛이 방안을 환하게 해주는 허실생백(虛室生白)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누군가 햇살처럼 비집고 들어올 수 있는 틈새나 자그마한 공간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왜냐면, 그 틈새로, 사이로, 공간으로 인해 타인과 더불어 소통하고 함께 빛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시골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걷는데 갈라진 틈새에 핀 들꽃과 지나친 바람의 손짓에 하늘거리는 들풀을 보았다. 그들의 시선은 희망의 절벽이 아닌 절벽 끝에서도 희망의 지평선과 수평선을 향하고 있었다. 이유는 환경을 탓하지 않고 서로 등을 내어주고 등을 지며, 손 내밀어 키워주고 발 내밀어 밀어 올려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의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온갖 험담, 잡다한 모략과 술수가 난무한 현실 앞에 등과 등을 맞대고, 손과 손을 내밀며 발과 발을 맞출 수 있는 틈새의 통로는 정작 우리에게 없는 것일까?

 

서울 도심의 한가운데로 흐르는 한강 위의 다리를 걷다 보면 그 틈새에도 이름을 알 수 없는 초목 등이 자라고 있다. 그 틈새 사이에 피고 자란 꽃과 풀들은 비록 공해에 찌들고, 온갖 먼지를 뒤집어쓰고서 오고 가는 이들의 발길에 차이면서도 꿋꿋이 살아간다. 저 작디작은 틈바구니에서 알록달록 얼룩진 웅얼거림으로. 타는듯한 햇살에 의한 갈증은 아침의 이슬로 온몸을 적시고, 무관심으로 지나칠지언정 스쳐 지나간 행인에겐 하늘하늘 대며 미소도 보낸다. 이렇게 두터운 먼지와 시커먼 공해, 서로 눈 맞춤이 사라진 오늘날 내 옆구리에 자그마한 빈자리 하나 내어주며 들꽃 같은 인정의 꽃을 피울 수는 없는 것일까?

 

들풀과 들꽃이 자라고 증식한다는 것은, 수없이 지나치고, 밟고 밟히고 걷어차이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누구의 눈길에도 관심 없고 앝디얕은 곳에 뿌리내리고서 살아가지만, 그 들꽃의 향기는 너와 나, 오가는 뭇사람들의 손길, 발길, 옷깃에 스미어 피어오르고 있다. 이렇게 내어준 틈새의 삶이 바로 타인과 쌓아놓은 벽을 허물고 경계를 지우는 것이 아닐까?

 

자연의 환경에도 다양한 틈새가 있다. 옹달샘물은 산골짜기 계곡의 가장 낮은 사이와 사이를 비집은 방식으로 흐르고, 바위와 바위 사이의 틈새로, 나무와 풀과 야생화의 뿌리와 뿌리 사이로 흐른다. 이처럼 산과 들에는 보이는 곳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의 틈새가 있어 산천의 초목과 야생의 날짐승과 길짐승들이 살아가고 있다. 몇 년을 같은 아파트 같은 층에 살아가면서도 누가 누구인지 몰라 이웃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우연히 같은 층에 내릴 때는 뻘쭘한 자세와 눈인사만 하고 자기 집의 호수를 향해 빠른 발걸음으로 향하는 작금의 현실, 살아가면서 비좁은 틈새라도 있어 이웃끼리 사이와 사이에 함께 설 수는 없는 걸까?

 

어느 누구의 사랑도, 관심도 없이, 아니 그러한 것을 초월해서 오직 자신의 생명력을 키워가며 번식하는 들풀과 들꽃의 생명력, 어느 조건에서도 꽃을 피우고 마는 그들의 강인한 생명력은 비좁고 먼지 끼고 온갖 소음들이 소곤거리고 악다구니 쓰는 환경이지만, 그곳에는 곧 자그마한 틈새가 있기 때문이다. 서로 험담하고 헐뜯고 비판하고 뒷담화가 난무한 각다귀판의 현실 앞에 꽉 닫힌, 힘껏 동여맨 가슴과 마음에 조그마한 아주 자그마한 틈새 한 곳 내주어 소통하는 사이가 되면 아니 될까?

 

빈 틈새를 지니고 친구와 이웃 등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맺은 인연은 비록 자기 자리에서 자기 방식대로 살아갈지언정 그것은 전체 안에서 하나인 나로, 하나인 내가 전체 안에서 살아가며 서로가 비춰주는 그물망 같은 삶을 살아가면 아니 될까?

 

누군가와 담소를 나누고 대화할 때 상대방의 쉼 없는 재잘거림과 끝 모를 이야기에는 나의 한마디가 끼어들 틈새가 없다. 그러면서도 상대에게 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느냐?”며 묻는다.

 

“빈틈없이 꽉 차 있는 당신에게 어찌 내가 들어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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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6회 아산문학상 금상

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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