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들어와 전반적인 문화에 걸쳐 전통에 관심이 높아졌다. 그래서 전통의 이해와 계승발전 등과 같은 우리 것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연어의 귀소본능처럼 우리는 전통을 찾아 익히고 공부해야 한다. 옛것에 대한 막연한 향수라기보다는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서구 지향적 문화에서 탈피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문화권이 갖지 못한 보다 새롭고 세계적인 우리의 것을 찾아야 한다. 그 이유는 우리 것들에 대한 창의적 사고를 하려는 노력의 한 방편으로 생각할 수 있어서이다.
인류학에서 발달된 중요한 개념인 ‘문화상대주의’란 세계 여러 문화를 우리 자신의 가치관이나 우열의 척도를 가지고 보지 않고 그곳에서 사는 사람의 시각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외국의 문화가 무조건 훌륭하다고 믿는 ‘문화 사대주의’나 자기의 문화가 세계의 최고라고 여기는 ‘문화 국수주의’는 재고되어야 하지 않을까. 자기들이 중심이라는 천동설과 옴파로스 증후군에서 벗어나야 할 이유다.
가끔 옛것을 찾아 떠나는 길에서 느끼는 바이지만, 한 번 갔다 오면 다시는 가보고 싶지 않은 곳이 있고 몇 번이라도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그중에 한 곳이 병산서원이다. 그 이유는 병산서원이 갖는 건축학적 의미와 그 건축이 주변의 자연경관과 합일되는 천인합일적인 선조들의 사고방식에 대한 것들이다.
또한, 현대의 복잡다단한 생활을 벗어나 있는 이곳에서 약 400년 전의 그 형상들과 함께 호흡하고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사실 병산서원과 아주 멀지 않은 곳에 퇴계 이황의 도산서원이 있고 안향을 배향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이 있고 그 외 서원을 많이 가보았지만, 유난히 또 찾고 싶은 곳은 병산서원이다. 특히 특히 벽과 문, 창이 없는 만대루와 달팽이 모양의 머슴 뒷간이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고 생각이 난다.
만대루는 측면 2칸 정면 7칸의 누樓이다. 휜 기둥은 휜 데로 가공하지 않아 인위적 냄새가 없다. 주춧돌 또한 자연석 그대로의 거칠고 투박하다. 이러한 만대루 모습은 오랜 비바람과 눈보라에 씻기고 씻긴 형상이다. 마치 세월의 주름살을 가슴에 안고 사신 융융한 구순 엄마의 완숙미를 보는 것 같다. 전혀 인공적인 덧칠을 하지 않아서인지 마룻바닥은 거친 듯하지만, 만져보면 나무 특유의 질감에 사람들의 손과 발의 흔적들로 반질반질하다. 만대루의 기둥은 서원이 건립된 당시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한다. 그러니 400여 년 전의 숨결이 마루와 기둥의 틈새에서 들려온 것 같다.
산이 병풍일 수는 없지만, 산의 모양을 병풍으로 보고 그 병풍에 어울리고 걸맞은 건축물을 구성해서 자연을 완상하고 그 자연에 생명을 불어넣어 물아일체의 삶을 살았던 선조들의 지혜와 자연관에 새삼 감탄할 따름이다. 하물며 몇 폭의 산인지 골짜기를 손가락으로 세어 보면서 맞춰보는, 지극히 무감각 적이고 마른 황무지 같은 감성의 소유자가 바로 나였으니…… 만대루 누마루 여백에 병풍산 한 폭 들여놓을 생각도 할 줄도 모르고.
이러한 만대루에 나는 올라앉아 주변의 경관을 완상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해본다. 잠시라도 회색빛 도시의 일상을 벗어나 시공간을 초월해서 안도현 시인처럼 단추 몇 개 푸는 것이 아니라 웃통과 바지까지 벗어 건너편 병풍산에 걸쳐 놓고, 벌러덩 드러누워 가을 달빛으로 샤워도 하고, 파란 공기 한 톨로 이도 닦고, 낙동강 물에 잠긴 달을 동이로 길러와 술잔에 띄우고, 파란 하늘은 뚝 사발에다 퍼부어 마시고, 그 사발 잔의 달빛 윤슬을 안주 삼고, 계면조의 초삭대엽의 시조 한 수 읊조리며 취해서 만대루에 누워 가을바람을 이불 삼아 누웠으면(취래와만대루 醉來臥晩對樓). 혹시 코 고는 소리에 자던 새가 깨어나지 않을까(宿鳥知) 걱정도 되지만.
이렇게 둘러본 병산서원의 건축물과 자연과의 관계는 상호 배타적이 아닌 의존적이고 합일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병산서원은 그 공간적 특성에서부터 학문의 은거를 종용하고 풍수지리설 및 음양오행 사상에 뿌리를 둔 당시 사회 문화상을 그대로 반영했고 자연과 혼연일체 된 결정체로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서원 내부를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머슴의 뒷간이다. 이곳 지방에서는 통시(便所)라고 하는데 그 모양이 자못 신기하다. 보통 달팽이 모양이라고 하는데 난 어찌 보면 태극 형태로 보이기도 한다. 담장 안에 있는 유생들의 화장실은 기와로 이어서 비를 피하게 되어있는 데 반해 담 밖의 노(奴)의 통시는 비 가리개도 없이 열려있는 뒷간이다. 근심을 덜어내고, 통쾌하고 시원해야 할 장소마저 班常(반상)의 차이를 두었던 시절 상황을 생각게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상당한 시간이 거세된 이곳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설익은 정신을 농익게 해 주었고,, 아름다운 건축미를 볼 수 없는 혼탁의 눈을 서원 앞에 흐르는 낙동강 상류의 강물이 헹궈 주었다. 그리고 옛 시대의 건축물은 그 시절의 사상과 이념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강가의 들녘에는 풍요로움이 넘치고 나뭇잎들은 다음 생을 위해 고운 옷으로 갈아입는 중이다. 강물에 던져진 햇빛 한 덩어리가 차창에 부딪힐 때 달리는 차 안으로 노오랗게 익은 야생의 국화 향이 알싸하게 날아든다. 난 그 향의 날갯짓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일상탈출을 하고 싶은 날, 남루한 기억들과 아픈 상처의 덩어리를 설거지하고 분리수거 하고 싶을 때, 축적된 지방질을 제거하고 싶을 때 다시 한번 이곳에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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