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면서 고난과 역경이 클수록 어딘가에 기대고 싶고 매달리고 싶다. 사실 인간은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행복지수가 높아질 것 같은데 오히려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살아가는 과정에 고난과 역경을 겪게 되고, 이웃과 타인들에게서 때론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이러한 아픔과 상처를 겪고 입게 될 때 문학과 예술이 참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특히,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면서 더욱 그러하다. 이럴 때일수록 그냥 묻고 잊기보다는 좀 더 근원적인 질문을 하면서 돌파구를 찾고 방향성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누군가의 시집 한 권, 어느 자그마한 음악회, 인사동 골목길 어귀에 있는 자그마한 화랑, 늦가을 정취를 읊조리는 시낭송회 등에서 자신만의 시간과 생각을 가지고 먹고사니즘에 피폐해진 정신의 옷자락을 다잡아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맑고, 밝고, 아름답고, 행복과 여유로움이 넘치는 곳에서도 문학과 예술의 씨앗이 싹 트일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러한 곳에서는 예술이나 문학이 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진흙탕 속에서 한 송이의 연꽃이 피어나듯, 문학과 예술 또한 진흙탕이 아니면 꽃으로 피어나지 않는 게 문학이고 예술이기 때문이다.
배부른 삶에서는 깊이 있는 문학이 태동할 수 없다. 고통과 상처, 그리고 연민이 함께할 때 좋은 작품을 기대할 수 있다. 그래서 문학가와 예술가의 삶은 상처의 흔적들이 바탕에 깔려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지금처럼 잘 살고, 잘 먹고, 풍요롭고, SNS 만능의 세상에는 문학과 예술이 존재하지 않을까? 결단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물질적 풍요와 외양의 화려함 이면에는 그만큼 정신은 피폐하고 그늘의 깊이는 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물질성과 화려한 불빛을 쫓으며 정신을 놓아버리는 순간 바로 그때, 그 무언가를 느끼고 깨달을 때, 오히려 문학과 예술은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왜 다양한 분야에서 즉, 심리학이나, 종교학, 그리고 커다란 회사의 입사지원자 중 인문학 전공자를 채용하듯이 다양한 분야에서 문학과 예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그것은 누구나 알다시피 문학과 예술이 무한한 상상력과 끝없는 창조성을 뒷받침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모든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재료가 되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과 예술은 이러한 경계선 언저리에 서 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그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서 정신적 충만감을 경험케 한다.
그러나 문학과 예술을 하는 사람 중에는 아는 체, 잘난 체, 하는 비열한 게으름뱅이들이 있다. 한마디로 천민적 사고관을 가진 문학인, 예술인들이다. 한잔 술에 취해서든 아니면, 난 전문가네 하며 거들먹거리는 비열하고 비루한 전문가들, 그러한 지식인들 말이다.
그리고 문학과 예술은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어떤 범주에 예속시켜서는 안 된다. 그래야 상상의 날갯짓을 할 수 있고 미지의 세상으로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과 예술에 대해 굳이 해석하려고 하지 말자. 학교에서 천편일률적으로 문학 시간에 듣고 배웠던, 그래서 시험문제에 같은 답을 써야만 했던 주입식 교육인 문학의 표준성을 떠나자. 그것은 설득력도 떨어질 뿐만 아니라 문학성과 예술성의 격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문학의 비표준화를 활성화하자
서두에 얘기했듯이 문학과 예술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창작된다. 중국의 고전 미학에서는 ‘분서(憤書)’를 예술창작에서 하나의 법칙을 띤 현상으로 보았다. 한마디로 분하고 불만스러운 주객의 사이에서는 모순에 가득 찬 분노의 감정을 분출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감에 가득 찬 분노의 정감이 예술창작의 소재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서설(憤書說)의 대표적인 사람이 감옥에 갇혀 『주역(周易)』을 정리한 문왕이다. 또한, 익히 알고 있는 굴원은 궁형의 형벌을 받고서도 『이소(離騷)』를 지었다. 이렇게 본다면 문학인과 예술인들은 고난과 역경, 곤궁함에 처해 있을 때 훌륭한 작품을 창작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살을 시도해 보지도 않고 자살을 경험한 것처럼, 술을 마실 줄 몰라 술에 취해본 적이 없는데 술 취해 비틀거려본 것처럼, 병에 걸려본 적도 없는 사람이 병을 앓고 겪어본 것처럼, 이 같은 마음으로 창작을 한들 얼마나 감동을 줄 수 있고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겠는가. 문왕과 굴원을 떠 올려본 이유이다.
수난자의 대표가 바로 문학가이고 예술가이다. 순간순간, 시시때때로 고통과 역경의 삶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고난의 산을 오르내리는 시지포스이고, 고승 대덕의 십 년 면벽 수련의 고독과 침묵이다. 그 속에서 스스로 채찍질하는 가운데 자기 발견을 하는 문학가와 예술인, 그들은 수난자이면서 발견자이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가슴에 와닿은 김현 선생의 글을 옮겨본다.
“문학이란 권력이나 재력을 갖추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지만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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