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적 미의식과 질박한 서정성의 시학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정현우 시인의 80여 편 남짓 원고를 탐독했다. 그의 시 세계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일상성을 최대한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성적이거나 논리적 예리함, 지적인 주장보다는 몸소 체험과 경험에서 체득한 감성을 통해 대상과 교감하고 소통하고 있다. 그래서 시적 정조가 부드럽고 따뜻하면서 온유한 느낌의 미적 감응으로 다가온다.
특히 그의 시상은 자연의 현상 속 꽃과 비 등의 시편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발견하고 있다. 특히 애달픈 모정에 대한 그리움과 술에 대해서는 남다른 의미와 깨우침을 술잔에 담아 마시면서 자의식을 내면화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이러한 시상을 감각적으로 표출하면서 정감 가는 시인만의 시어와 산뜻한 리듬감, 그리고 그만의 상징, 비유 등의 수사법으로 사유하며 주제 의식을 상기시키고 있다.
어느 시인의 작품이든 그 작품 안에는 그 시인만이 선택하는 소재와 수사적 특징이 있다. 이러한 과정에 시인의 인생관이나 특별한 심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또한, 시인의 감성은 시어에 스며있고, 객관적 등가물인 소재를 통해 시상을 투영시켜 구상화한다. 이에 필자는 그의 자연관에서 취한 소재와 그리고 모정, 술에 대한 단상 등의 시어와 시편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나지막한 야산을 둘러싸인 양지바른 작은 공간
바람도 멈춰버린 정오 즈음에
따스한 햇살이 머무는 이곳, 여향헌(餘香軒)
나는 이 소중한 공간에서 얼마나 머물 수 있으려나
잠시 드리운 행복감이 내게는 지나친 욕심일까
바람도 멈추고, 햇볕도 멈춰버린 정오 즈음에 여향헌에서…
_ 「바람도 머물다가는 여향헌(餘香軒)」 전문
“여향헌(餘香軒)”은 정현우 시인이 사는 택호이다. 향기가 남아도는 ‘여향헌(餘香軒)’인데 바람인들 어찌 지나치겠는가. 담양에는 그림자도 쉬어가는‘식영정(息影亭)’이 있듯이, 여주엔 바람이 쉬어 가는 ‘식풍정(息風亭)’을 여향헌 뜰에 앉히고 싶어 한다. 그곳에서 행복을 베개 삼아 눕고, 부는 바람 이불로 덮고, 남아도는 향기는 둘러두고 취해보고픈 시인의 전원주택에 대한 예찬의 시이다.
향긋한 연기가 문틈으로 스며들고
따닥 따닥 딱
따닥 딱 따닥
(…)
물 부어 긁어 담은 바가지는 엄마 밥
둥그런 양은 밥상에 커다란 양푼 하나
_ 「밥 냄새」 일부
위 시에서, 화자는 어렸을 적 이른 아침에 밥 짓는 엄마의 모습을 떠올린다. ‘밥 향기’의 이미지를 떠 올리며 “따닥 따닥 딱/따닥 딱 따닥”의 의성어를 통해 부엌의 불 피우는 모습과, “보리밥 위에 누룽지는 내 밥/물을 부어 긁어 담은 바가지는 엄마 밥”에서 엄마는 늘 바가지에 밥을 드시면서도 밥의 진미라 할 수 있는 누룽지는 자식에게 얹혀주신다. 화자는 밥상이라는 이미지에서 피어난 모정에서 구수한 그리움 한 주걱 퍼 올리고 있다.
손톱의 흙을 씻어내는 손가락 사이마다
찢어진 바랭이풀이 박혀있습니다.
미끄덩대는 검정 고무신 속에도
흙과 풀이 잔뜩 들어 있습니다.
_ 「어머니의 모시 적삼」 일부
햇귀가 솟아오른 이른 아침에 어머니는 벌써 밭에 나가 지심을 메고 오셨다. 바랭이풀은 자라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손톱에 흙”, 손가락 사이에 박힌 “바랭이풀“, “미끄덩대는 고무신”에서 어머니 하루의 시작점을 볼 수 있다. 또한, “모시 적삼”과 “고추밭”, “검정 고무신”, “모시 적삼” 등의 시어는 시인 어머니의 은유이면서 상징이다. 화자는 그 상징과 은유 속에서 어머니의 단상을 떠 올리고 있다.
내 어머니 살아계셨을 때
식사 때만 되면 늘 타박이셨다
밥을 조금 입에 넣으시고 하시는 말씀이
모래알 씹는 것 같다.
입이 소태처럼 쓰다
밥을 파리가 빨아놓은 것 같다
타박도 많고 투정도 많았던 어머니.
_ 「아내에게서 어머니를 본다」 일부
나이 듦은 입맛마저 앗아간다. 식사하는 노모에게서 “모래알 씹는 것 같다”는 말을 흔히 듣게 되는데, 그러한 생전의 어머니를 떠 올리면서 지금의 아내를 바라본다. 2연 1. 2행의 “오늘은/아내에게서 그러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에서 알 수 있듯이 화자는 지금의 아내에게서 지난날의 어머니를 반추하고 있다. 이처럼 시적 대상인 어머니의 이미지에서 아내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정서로 형상화한다. 한편으로는 어머니와 아내에 대한 예찬이면서 실제적 애련이다. 이렇듯 시는 진솔한 마음으로 써야 한다.
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짐
그렇게
짐이 아닌 짐이 되어 버렸다.
_ 「짐과 짐꾼」 부분
사람은 누군가의 짐을 짊어지고 가는 짐꾼이면서 때론 예상치 못한 짐이 될 수도 있다. 화자의 푸념 어린 듯하지만, 진정인 듯한 시상의 전개다. 한때는 그 무언가를 내 안에 싣고, 안고 다녔는데 어느 순간 누군가가 나를 싣고, 안고 간다는 것. 세상 이치가 그러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러함에도 왠지 씁쓸하다. 짐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특히 나이가 들면서는 더욱 그러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렇다고 절대 ‘잉여 인간’이 아님을 화자는 간과하지 않는다. “들어주고”, “옮겨주고”를 했었고 지금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은 발이 아파서 한참 동안 만지작거렸다
바셀린 바르고 마사지하고 나니
발이 해맑게 웃는다
생각을 낮추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생각을 낮추니 모든 것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낮은 사랑이다.
「낮은 사랑」에서 러시아 형식주의자 쉬클로프스키의 ‘낯설게 하기’의 수법을 볼 수 있다. “생각을 낮추니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고/생각을 낮추니 모든 것들이 새롭게 다가왔다.”에서는 낯익고 일상적인 것들에서 오는 낯섦을 보고 있다. 생각을 낮추고, 낮추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인다고 한다. 화자는 ‘낮춤’의 진리를 ‘발’이라는 심상을 통해 높음에서 보지 못한 것을 낮음에서 볼 수 있다며 내적 자아로 형상화한다. 시인은 일상적이고 고정불변의 사고와 인식의 틀을 망치로 깨부숴야만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그래서 시인은 비뚤어진 시각이 필요하다.
하루를 사는 하루살이나 백 년 가까이 사는 사람이나, 잠시 와서 머물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화자는 아스팔트 길 위에 꽃무덤이 된 하루살이의 주검에서 “나도 기나긴 삶이라고 생각했지만/살다 보니/너의 삶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알았다” (「하루살이」 부분) 며 하루살이의 삶과 인간의 삶에서 몸의 감성을 통해 대상과 교감하고 소통하면서 동일성의 미학을 발견하고 있다. 세상을 달관하는 듯한 화자는 “천지라는 것은 만물이 쉬어가는 여관(夫天地者萬物之逆旅)”이라 했던 이백을 떠 올린 시편이다.
앗,
집이
썰렁하다
냉장고 문을 여니
그 속에 기다리는 소주 한 병
바로 이것이 나의 참 인생이지
조심스레 꺼내야 한다.
들키면 날벼락이다
혼술이 좋아서
그냥 마신 술
기분 야릇
한잔
쪽.
_ 「혼술」 전문
‘혼술’은 고독무우(孤獨無友) 때가 좋다. 그때 술잔에 흥건히 고인 시혼을 집어 들어 올리고, 고독과 사랑 한 방울 따라 마시는 것이다. 이처럼 화자는 ‘혼술’이라는 심상을 형상화해 집에서 “기분 야릇한”,“참 인생”을 마시고 있다. 혼술에 도취 된 엑스터시라고나 할까.
무엇보다「혼술」을 보면 문자의 속성 중 형태를 중요시했던 1970년대 프랑스에서 일어난 ‘상형의 그림 시’를 떠 올린다. 대표적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It’s raining」이나 「에펠탑」처럼, 시인은 ‘혼술’의 시 형태를 시각적으로 도형화해 글자의 배열만으로 애주가인 중년남성의 불룩한 배의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이처럼 시가 그림처럼 다가올 때 어쩜 독자들을 더욱 사로잡을 수 있다. 그래서 시인은 소위 말한 시의 형태주의(formalism)를 시도한 것이다. “참 인생이지”의 “참” 또한 의도적으로 유명한 모 주류회사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혼술」은 시에서 의미 찾기보다는 시 형태를 중시한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뿌연 비바람을 업은
이포보 여울목도
한숨을 내쉬며
쓴 소주잔을 기울였다.
_ 「비 내리는 이포보」 부분
문학에서 물의 원형적 상징은 작품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지만, ‘생명력’과 연관 짓는다. 남한강의 이포보에서 시인은 1연의 “컵라면 한 젓가락에/김 서린 소주병을 찾았다.” 그리고 4연에서 “뿌연 비바람을 업은/이포보 여울목도/한숨을 내쉬며/쓴 소주잔을 기울였다.” 이처럼 주변 풍경과의 만남을 통해 물살이 센‘여울목’을 의인화해 자신과 동일선상에 놓고 인생을 논하며 함께 마신다.
길을 걷다가
문득 돌아보니 누군가 따라 걷고 있습니다
고개를 숙여 발끝만 바라보며 상념 가득한
모습이 참으로 나를 닮아 있습니다
양지쪽 흰 눈은 파르라니 몸을 녹이고
애써 바라본 하늘은
삼킬 듯 나의 몸을 파랗게 물들여 갑니다
함께 걷던 그도 간데없고 나도 이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돌아가려니 어디로 얼마만큼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눈이 녹으면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어나는 곳
파란 하늘과 또 다른 내가 있는, 내가 멈춰 서 있는
이곳이 내가 돌아갈 곳이고 또 나아갈 곳이라는 것을
못내 인정해야만 할듯싶습니다.
가슴 가득 들이마셨던 맑은 공기는 가슴에서 입술로
입술에서 눈으로 전해져 맑고 따듯한 세상을
바라볼 수도, 말할 수도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내가 머무는 세상이 가장 행복한 세상이니까요
_ 「내가 머무는 세상」 전문
시집 제목인 「내가 머무는 세상」을 보자. 헤겔의 말을 빌리면 “서정시의 내용은 시인 그 자신이다”라고 했다. 이렇듯 자신의 내면적인 세계를 언어로 표현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느끼는 영혼과 감정의 상태를 일깨운다. 이렇듯 이 시에서 ‘길’, ‘눈’, ‘하늘’, ‘새싹’ 등의 시어에서 보듯 자연과 교감하면서 4연의“입술에서 눈으로 전해져 맑고 따뜻한 세상을/바라볼 수도,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라고 한다. 작가의 자연 친화적인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시에서의 감동은 기교가 아니라 진실에서 나온다. 이 시를 보면 함축적이기보다는 조붓한 숲속을 미음완보(微吟緩步) 하면서 자신을 스스로 뒤돌아보는 듯하다. 그러면서 마지막 행에서“내가 머무는 세상이 가장 행복한 곳이니까요”라고 한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내가 딛고 서 있는 이곳이 가장 행복한 곳이단다. 여기서 무슨 종교적 성찰과 철학과 사상의 책받침이 필요하겠는가. 이곳보다 더 나은 그곳은 없는데.
『내가 머무는 세상』 시집은 정현우 시인의 첫 시집이다. 시집은 시인이 지향하는 시적인 관념과 의미 등을 독자와 공유하고자 하는 강력한 언어의 집이고 사원이다. 또한, 시집은 시인이 창작하는 작업을 끝낸다는 의미가 아니다. 지금의 시집은 더 나은 시를 짓기 위해서 또 다른 시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삶을 노래하는 것이 시의 정신이고 시인이란 그저 시만 쓰는 사람이 아니라 가슴속 깊은 곳엔 생명의 온천수가 충만한 이들이다.
정현우 시인은 일반적인 수사법이나 상징, 기교, 그리고, 시어 조탁의 미학적인 형식을 깊게 추구하지 않으면서도 남다를 심상과 주제 의식, 그리고 운율적 작법과 자신만의 언어적 감수성으로 창작했다. 이렇게 빚어진 그의 시는 현대의 시론에서 공론되는 시류와 시론의 틀을 깨고 나와 그 밖에서 노닐고 있다. 그 이유는 정현우 시인의 심성이 금속성이 아닌 식물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리적 심성의 토양에서 자연의 극복이 아닌 감성적인 문화의 구조 속에서 자연 순응적이다. 그것은 로고스가 아닌 페이소스로 삶을 체험하고 겪으면서 시심을 가꿔왔기 때문이다.
정현우 시인은 삶에 대한 깊은 고뇌와 사색을 통해서 시상을 떠 올리고 있는데, 그것은 범상치 않은 시심과 시혼에서 건져 올린 감각적, 지각적인 시편들에서 알 수 있다. 그래서 다음의 시집이 더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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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내가 머무는 세상』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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