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집 해설

삶의 의미에서 발견한 감동의 시학

홍영수 시인(jisrak) 2022. 11. 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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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시인, 문학평론가)

 

 

시집 한 권은 시인의 인생역정에서 건져 올린 정신적 삶의 총체적인 발화 형식이다. 한 시인의 작품에는 작가 인생에 대한 특별하고 유별난 성향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스며들게 마련인데 특히 소재 선택이나 수사적 특징 등에서 그렇다. 사실 해설자는 스스로 발견자가 되어야 한다. 시인이 시 쓰는 행위 자체가 사물과 인생에 함축된 새로운 의미의 발견이기 때문이다.

이재학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그만이 선호하는 주제의식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잊혀가고 지워지는 자연관 속 고향에 대한 향수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 그리고 가장 두드러지는 모정에 관한 주제의식이다. 그리고 그만의 사유의 씨앗으로 꽃을 피워 시집의 열매를 맺고 있다.

 

시인의 고향 사랑은 표제시소사천을 비롯해서 1부의 10편 모두 시인이 태어나 자라고 성장하는 유년 시절의 지명 속 산, 수목, 꽃 등이 향수를 일깨우는 매개체로 등장한다. 우선 소사’,‘소새의 지명은 시인의 고향이기도 한 부천의 소사(素砂), 흰 모래에서 유래한다.

 

시작하는데 소재는 유형적인 대상이다. T·S·엘리어트가 현대시 작법의 핵심으로 제시한 객관적 등가물의 일차적 행위가 소재 선택에서 나타난다고 했다. 이재학 시인은 지명을 소재로 하거나 유사한 이미지를 가져와 교감하고 있다. 그러면서 시인의 넉넉하고 유유자적한 심상의 발판 위에 특정 지명의 외연을 확장하고 증폭시켜 일반화한다.

 

우리 동네에

소사천이 있을 때는

무지개가 하늘에 걸리곤 했다

아이들은 무지개를 잡으려

첨벙거리며 소사천을 달렸고

물방울이 튈 때마다

무지개가 끝없이 피어났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동네에 가득한 날이면

아이들은 무지개를

타고 가는 꿈을 꾸었다

그날 밤은 유난히

별들이 빛났다

소사천의 물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_「소사천」 전문

 

표제시소사천소사천이 있을 때는/무지개가 하늘에 걸리곤 했다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은 없어진 소사천을 특별한 비유와 수식 없이 동네”, “무지개”, “아이들’, “”, “웃음소리등의 시어에서 어릴 적 뛰어놀던 모습을 회상한다. 그리고소사천의 물소리도/들리지 않는다에서 도시화로 옛 모습을 잃어가는 것에 대해 과잉된 감정의 노출 없이 파편화된 기억을 떠올린다.

 

또한, 지금은 없어지고 흔적만 남아 토박이들의 먼 기억의 여행을 하게 하는 소사장의 소리, 그 소사장을 오가기 위해 넘나드는 여우고개에서 옛 장터에서만 볼 수 있는 정감 넘치고 인정이 오가는 풍경을 그린다. “두런두런 말()소리 같고/뚜벅뚜벅 발소리 같고”, “두런두런”, “뚜벅뚜벅의 청각의 이미지를 생동감 넘치게 형상화해 과거 장터의 활기찬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소새울의 팔백 년 느티나무

올해도 제사상을 받는데

오래도록 우리 동네 지켜주고

 

_「소새울 느티나무」부분

 

시에서 나무는 생노병사의 인간이나 자신에 대한 삶의 과정을 은유화 한 대표적 시적 대상이다. 화자는 동네의 팔백 년 된 느티나무를 수호신처럼 모시며 지금도 제사 지낸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옛 기억을 상기시킨다. 그렇지만 얘기를 들어주고 꽹과리 치면서도 정작 팔백 년 노 거수(巨樹)가 살아온 모질고 거친 삶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묻지 않는다고 한다. 오직 동네와 동네 사람들이 잘 되기만 빌 뿐, 인간의 이기적인 편향성을 화자는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연()구분을 하지 않고 네 번이나 리드미컬하게내 고향 소새울”(소새울 연가) 하는 시의 흐름은 한 편의 동시이면서 동요이다. 화자가 왜 연가라고 했는지를 알 수 있고, “소새울의 이미지와 의미 그리고 리듬 면에서 손색없는 시의 3요소를 갖춘 작품이다. 그리고소새울에는 지금도 여전히 화자의 동심이 서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내 얼굴이/보고 싶은 날/경인 옛길에 가면/우마차를 타고 가는 /고조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웃는 얼굴 볼 수 있고”(경인 옛길부분)

 

미술사학자인 우현 고유섭(高裕燮)<한국미의 산책> ‘京仁八景“(소사도원 춘경(素砂桃園 春景)에 양춘(陽春)이 포덕(布德)하니 산장(山莊)도 붉을지고 황조(黃鳥)의 울음소리 새느냐 마느냐 곁에 님 나를 보고 붉은 한숨 쉬더라.” 고 쓰여있다.

 

봄날의 복숭아밭에 꾀꼬리가 울음 우는 곳, 그곳에서 고조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웃는 얼굴 볼 수 있고/ 할머니 손을 잡고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소환하니 만나고 집에 갈 때면/등뼈가 꼿꼿해진다라면서 조상님과 경인 옛길에 대해 새로운 자의식으로 회상하고 관찰한다.

 

여우고개 장승에서도 화자는동네를 걷다/여우고개 장승을 보고/사진을 찍었다/여전히 환하게 웃으며/반기는 얼굴 고마웠다처럼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과거 속에서 현실을 끄집어내는 그의 정신적 자유를 엿볼 수 있다.

이재학 시인의 고향에 대한 시에서 느낀 바는 특별한 영탄조 없이 회고조로 정서적 탐구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긋이 관조하는 심상으로 지명의 외연을 확장하고 증폭시키고 일반화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 시인의 시안이 예리하면서 세심하다.

 

엄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은 누군들 없겠는가. 특히 이재학 시인에게서는 두드러지게 모정에 대한 갈망과 깊이가 남다르다. 그리고 고향 소새울에서 인고의 희생적 삶을 사신 엄마의 신산한 삶을 떠 올린다.

 

꽃이 핀다

일생에 한 번은 화려하고 싶어서

늙은 엄마의 눈은

낡은 앨범 속 사진에 멈추어 있다

꽃이 핀다

자신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서

 

_「꽃」 전문

 

엄마는 일생을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여자다운 꽃을 피울 시간이 없다. 그래서 일까늙은 엄마의 눈은 낡은 앨범 속 사진에 멈추어 있다”. 화자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자신에게 미안하지/않기 위해서의 앨범 속 엄마의 눈에서 피우지 못했던 꽃을 본다. 마음속에 그려진 언어를 재료로 한 그림이 이미지라고 할 때 화자는 특정되지 않는 일반적인 의 비유적 이미지로 앨범 속엄마의 눈을 꽃으로 형상화하면서 엄마는 엄마 이전에 여자임을 말하고 싶어 한다.

 

엄마가 반죽한 밀가루가 부풀었다

밤마다 무슨 일이 있는지 밀가루는

아침이면 키가 자랐다

내가 물어도 엄마는 웃기만 했다

 

_「봄 1」 전문

 

봄은 약동의 계절이다. 한 해 계절의 시작이며 움츠리고 잠들었던 만물을 일깨우고 자라게 한다. 이러한 봄의 상징성에서 화자는 엄마를 발견한다. 그것도 엄마가 가족을 위해 밀가루 반죽해 놓은, 그 부풀어 오르는 현상에서 초목을 소생케 하는 봄과 자식들을 키우고 자라게 하는 동일성의 미학을 발견해 시적으로 형상화했다.

 

또 다른 작품, 모정에서도 늘그막에 접어든 엄마의 꿈이 아들과 하나 되는 것이란다. 자신이 품었던 것처럼 이승과 저승에서도 아들의 배낭에 들어가* 영원히 동행하는 것이 말이 화자에게 다가왔기에 기억을 한 것이다. ‘자궁배낭에서 무언가를 담고 품는다는 동일성을 발견한다. 화자의 뛰어난 관찰력이 돋보인다.

 

붉은 나뭇잎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저거 바늘에 찔려 나온 내 핏방울이여 내 핏방울이여 했다”(단풍부분)

가을의 대표성을 띤 붉은 단풍, 화자는 곧 떨어져 최후를 맞이할 현상을 보고 감각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내 핏방울이여 내 핏방울이여 했다.”에서 알 수 있듯이 강한 어투의 반복적인 리듬으로 절규하듯 외치는 어머니의 아픔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이렇게 화자는 추상적인 것이 아닌 구체적 사물인 붉게 물든 단풍에서 어머니의 바늘에 찔려 나온 핏방울 너머의 고단했던 삶 속의 핏방울을 보았을 것이다.

 

내려고 온몸의 기를 모았다/해바라기가 엄마가 되는 순간/나는 엄마의 얼굴을 보았다/꽃잎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해바라기의 비명 소리는/하루 종일 들렸다.”(해바라기부분)

 

문학에서 이미지란 어떤 사물을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있도록 제시된 언어적 표현이다. 화자는 일반적으로 바라보는 사고를 확 뒤집어 해바라기에서 아기의 울음소리/엄마가 용을 쓰는 소리가/해바라기 꽃봉오리에서 들리더니라고 하며 해바라기가 엄마가 되는 순간/나는 엄마의 얼굴을 보았다처럼 해바라기의 꽃봉오리가 터지는 순간 산고를 겪은 엄마를 본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상징적 이미지를 청각적으로 신선하게 빚어내고 있다. 그러면서 강렬한 환기성을 가져다준다.

 

이렇듯 ”, “단풍”, “등을 통해 모정을 심도 있게 표출해 내고 있다. 시인이 엄마의 삶과 모정에 관해 쓴 시들을 보면 범상치 않은 그의 심혼의 향이 피어오른 것을 알 수 있다. 체험적 요소가 배이지 않은 시는 영혼의 육성을 들을 수 없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관찰력은 이재학 시인의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체험하고 경험했던 것에서 우러나오는 결과일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계시던 자리에

내가 있다

저울에 올라간 듯

무심코 앉은 자리의

무게에 깜짝

놀란다

 

_ 「어른이 된다는 것」 부분

 

어느 날 그 어른들이 계시던 자리에 내가 있다. 이미 노인이 물려주어 받았던 젊음을 지금 내가 어른이 되어 젊음에 양보할 입장이 된 것이다.

 

나이의 나이테를 겹쳐 두르는 일은 쓸쓸한 일이다. 그리고 긴 그림자가 무겁게 느껴진다. 이미 지천명 고독의 무게를 느끼고 있는 화자는 그 노을 끝에 앉은 잘 익은 침묵의 무게에서무심코 앉은 자리의/무게에 깜짝/놀란다고 한다. 그러한 발견으로 부딪히는 대상을 따라 닮아간다는 것을 알기에 화자는 그 무게에서 오히려 저물어가는 삶의 중량감을 생각한 것이다. 사유하는 철학적 시편이다.

 

밤하늘에 뜬 달, 그달의 진정한 의미의 얼굴을 알 수 있을까? 금 토끼 은 토끼, 아폴로 등의 피상적 얼굴이 아닌 진정한 달의 낯빛 말이다. 화자는 얼굴에서 달의 얼굴을 사람의 얼굴로 비유하면서 진정한 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달은/어떤 얼굴일까그러한 얼굴 너머의 나를 찾기 위해 시를 써 보지만 결코 알 수 없는 참나’, “너는/누구야하면서 끝내 의미를 찾지 못하고 물음으로 끝낸다. 이렇듯 이재학 시인은 여러 편의 시를 통해 난 어디서 왔으며, 누구일까?”라는 존재에 대한 의문과 질문을 품고 있다.

 

기러기에게 물었다

하늘에도 길이 있냐고

고래에게 물었다

바다에도 길이 있냐고

(중략)

길 없는 길도 알지만

나는 허허벌판에

서 있다

 

_ 「고백」부분

 

기러기에게 물었다/하늘에도 길이 있냐고/고래에게 물었다이렇듯 끊임없이 길을 묻는다. 물론, 그 길은 화자가 가야 할 길이고 나아가야 할 길이기에 묻는 것이다. 그렇지만 길 없는 길도 알지만이라고 모순어법을 사용한 표층적 역설로 강조하면서나는 허허 벌판에/서 있다한다. 이렇듯 화자는 끝없는 의문을 가지고 난 누구인가를 묻고 있지만, 답을 찾지 못한다. 못 찾는 게 아니라 찾을 수 없는 게 바로 우리의 길이고 삶이다. 다만, 걷고 걸어가며 살아갈 뿐임을 화자는 고백하고 있다.

 

장자의 꿈 때문에

나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장자를 만나 나를 풀어달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장자가

난 네가 없으면 내 꼴이

우스워져 하는 거였다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장자의 뺨을 후려갈기고

돌아섰다

 

_ 「나는 나비다」 전문

 

그토록 많이 들었던 장자의 호접몽얘기다. 이 꿈 얘기는 초탈성을 보여주는 메타포로, 문학, 예술 분야에 영감을 주고, 시선의 전환에 중요한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화자는 시의 제목에서 보듯 나는 나비다라면서 꿈속에 함께한다. 그래서 장자에게 풀어달라고 했는데 난 네가 없으면 내 꼴이/우스워져 하는 거였다는 답을 듣는다. 익히 알다시피 호접몽의 핵심 키워드는 물화(物化)’이다. 너와 내가 독립된 개물(個物)의 세계가 아니라 서로 얽히고설키고 어울린 관계로 본다.

 

다른 사물과 동화되어 일체가 되는不二性이 병존하는 세계이기에 놓아주지 않는 장자를 향해 의인화된 나비가 기가 막혀 장자의 뺨을 후려갈기고/돌아섰다고 했다. 이미 호접몽의 의미를 너무 잘 아는 화자는물화라는 장자 사상에 뺨을 때리면서호접몽속 내적 가치관을 통해 시적 자아의 마음을 비유한다. 그렇게 은유화로 형상화한 작품 미학적 측면에는 낯설게하기가 배어 있는 새로운 인식이다.

 

연탄재가

난로 옆에서

우연히 마주친

연탄에게 물었다

너는 왜 그렇게 뜨겁니

연탄재는 자신도

한 때 연탄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_「노인과 소년」전문

 

패러디(parody), 인유는 상징의 한 변형이다. 또한, 시를 읽는 순간 독자들은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가 떠오를 것이다. 그렇지만 시인은 단순 차용이 아닌 보다 독창적인 시각과 관점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이다. “너는 왜 그렇게 뜨겁니하고 물으면서 연탄재는 자신도 한때 뜨거운 연탄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에서 보듯 뜨겁게 타오르는 연탄의소년에게 타고 난 연탄재의노인을 통해 일상적인 삶에서 자신의 과오나 현실을 모르고 오직 자신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이기적인 시각을 연탄재를 통해 꾸짖고 있다. <너에게 묻는다>의 예술적 기교를 넘어선, 한시에서 얘기한 환골탈태(換骨奪胎)’, ‘점철성금(點鐵成金)’ 경지이다.

 

소리에 대한 기억에서는 인간은 나이 듦에서만 보이고 들리는 게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는 것이 들리는 것이다. 특히 창조를 생명으로 한 시인은 눈으로 듣고 귀로 보기도 한다. 이제야 눈앞의 것만 보다가 보이는 것 너머의 것을 볼 수 있다. “어른이 되고서야 그게 별이 떨어지는/소리라는 것을 알았다처럼.

 

아! 자유로운 저 꽃을

어떻게 말 할 수 있나

말(言)을 벗어 버리면

혹 꽃을 알 수 있나

 

_ 「눈꽃(雪花)」 전문

 

하늘에서 송이송이 내려 나뭇가지에 핀 눈꽃’, 화자는 ()을 벗어 버리면 혹 꽃을 알 수 있나고 한다. 이미 화제로 눈꽃이라고 했으면서 어떻게 말 할 수 있나라고 한다. 화자는 사람의 말로는 다다를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것은 바로언외지의言外之意’, 즉 말 너머의 의미를 생각한 것이다. 시인은 감각 너머의 그 무엇을 궁구하고 찾는 것이다. 4행의 시에서 선시(禪詩) 한 수를 읊조리는 느낌이다. 무언으로 침묵한 자연의 언어를 어찌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낮에 진찰을 위해 상의를 벗었을 때

여의사가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가슴이 돌덩어린데 그거 언제 해봤어

순간 그녀는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오랫동안 잊고 지낸 일이었다

 

_ 「불통」 부분

 

이 시에서는 이성적 인간이 아닌 동물이라는 카테고리 속 인간을 궁구하고 있다. “가슴이 돌덩어린데 그거 언제 해 봤어라고 묻는 여의사의 질문에 순간 그녀는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오랫동안 잊고 지낸 일이었다처럼 동물적 본능의 속성을 가진 인간의 성적 담론을 제시하고 있다.

 

환장하겠네/환장하겠네(중략)/미워 죽겠네/미워 죽겠네”(분꽃부분) 2음보의 빠른 템포로 김광균 시인의 - 곳에서 여인의 옷 벗는 소리를 연상시키듯 밤이면 옷 벗는 그녀의 유혹에가슴 아파하고 있으며, 일출에서도 --히 물기를 닦는/그녀는/나를 /설레게 한다”  이처럼 시인은 언제 해 봤어(불통)”, “밤이면 옷 벗는 그녀(분꽃)”, “물기를 닦는 그녀(일출)”에서처럼 성적 분위기를 선뜻 느끼게 하는 시구에서는 차라리 해학적인 정서마저 느낀다. 반복적이고 대립적인 이미지의 유사한 표현으로 성적 분위기를 익살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어떤 생각도 없이

어떤 소원도 없이

어떤 슬픔도 없이

어떤 행복도 없이

 

_「생일」 부분

 

이 시에서는, 두운 어떤”, 요운 각운 없이등의 단어로 된 운율을 띠면서 2음보의 경쾌한 리듬감으로 축하와 순수 그 자체인 생일을 축복한다. 그러면서 샘(옹달샘)’의 웃음을 역설적으로울어보고 싶은”, “-이라고 한다.

 

문이 조금 닫히면/초승달/문이 반쯤 닫히면/반달/문이 꼭 닫히면/보름달/문이 확 열리면/하늘/내 마음도/달처럼 /열었다 닫을 수 /있으면 좋겠다,”(전문)

 

출입을 표상하는 의 이미지와 의 영어인 ‘Moon’의 이미지를 접목하여 삶의 근원을 정서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은 삶의 시작점이고 끝점이기도 하다. 우린 삶과 죽음의 문 사이에서 수없이 드나드는 문을 만난다. 화자는 출입하는을 통해 인간의 삶을 회전문 같은 윤회의 삶을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발상의 사유가 전복적이다.

 

그리고 시인은 가족이라는 시를 통해 현대의 가족 구성원의 세대 차이에서 오는 분위기를 식당이라는 객관적 장소를 통해 어느 집안이나 느낄 수 있는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둘러앉은 식탁에서 아버지는 먹자한마디를 했다.” 아버지의먹자한 마디가 바로 시안(詩眼)이다. 오직 나만의 삶, 그 외 타인의 삶은 관심도 없고 냉담일 뿐이다. 온 식구가 모인 식당이라는 장소에서 식구 각자의 움직임을 포착해 현실적 상황을 통찰해 낸 시인의 시심이 놀라울 뿐이다.

 

시에서 발견이 주는 의미는 크다. 독자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을 시인이 발견하여 독자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고 사물을 보는 관점을 새롭게 해서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재학 시인은 흥분하지 않고 현학주의의 치졸함을 보이지 않는 시인의 새로운 시학은 독자와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공감하게 한다. 시가 미적 기능의 우월성만 드러내는 시대는 사라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재학 시인은 특별한 시적 기교나 묘사, 수사법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사물의 재인식을 통한 자기만의 시적 형상화를 발휘한 점에서 앞으로 새로운 시 창작활동에 큰 기대감을 갖게 한다. 해설은 아무리 잘해도 그 시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게 바로 시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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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