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문학 칼럼 99

여행, 잠든 동사(動詞)의 고삐를 잡아당기자.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서 눈앞에 나타난 현상, 그 자연의 현상인 풍광은 상념에 사로잡히게 한다. 내가 바라보기 때문에 풍경이 다가오는 게 아니라 낯선 자의 시선과 발걸음에 풍경이 스스로 다가와 자신에 대한 모든 것들을 나에게 전해주는 느낌이다. 얼마 전 강원도 양양지방의 폐사지 두 곳을 답사했다. 바라던 대로 두 곳 모두 답사객, 여행객 한 명 없어서 좋았고, 필자 또한 혼자여서 더욱 좋았다. 텅 비어서 휑한 느낌마저 들고, 오히려 스산한 듯한 분위기에 서 있는 석탑과 흩어진 와편들에 감정을 이입해 교감하면서 천 년의 숨소리와 전혀 녹슬지 않고 어눌하지도 않은 그들만의 언어로 무언의 소통을 할 수 있었다. 천 년 전의 시간의 품으로 들어갔다. 기억의 사원, 지금은 폐사지로 잠든 시간의 땅이다. 난 그 역사..

노마드(nomade)적 視線

필자의 서재는 넓지도 좁지도 않다. 책상에서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는 수시로 만져야 할 책이고, 그 외의 책들은 십진분류법이 아닌 나만의 분류법으로 언제든 손쉽게 찾도록 책장에 꽂혀 있다. 그리고 한 편에는 질서 없이 눕거나, 비스듬히, 때론 구겨지고 찢어진 표지 위에 쌓인 먼지를 머금고 흩어져 잠들어 있으면서 언제든 깨워 줄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말을 건네며 대화하고, 노래 부르고, 건물을 짓고,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책꽂이는 같은 책끼리 꽂혀 유유상종하고 바로 곁에는 또 다른 종류의 책들이 있다. 이렇듯 다른 사고와 이념을 가지고 이웃하며, 같은 책장에서 類類相從(유유상종)하면서 異類相從(이류상종)을 하고 있다. 저들을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모든 가락은 또 다른 생각의..

챗GPT, 생각을 생각할 줄 아는.

최근에 대중매체의 화젯거리는 단연 그 열풍이 심상치 않은 미국의 인공지능 연구소인 오픈AI(OpenAI)가 개발한 ‘챗GPT(ChatGPT)가 아닌가 한다. 생성형 인공지능인 챗GPT는 인터넷의 공개된 모든 자료를 바탕으로 기계적 학습을 통한 사전에 잘 프로그래밍 된 생성기를 말한다. 챗GPT는 질문을 입력하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텍스트로 곧바로 응답한다. 이러한 전문 대화 형식의 인공지능 구조이기에‘챗(chat)’이 붙는다. 그래서일까, 챗GPT는 매우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연설문이나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자료, 주식 종목 추천 그리고 음식 요리의 레시피까지 개인의 신상정보를 제외하고는 모든 질문에 문장으로 답을 하고 있다. 이렇듯 만능 인공지능의 활용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빠른 발전으..

물음느낌표 Interrobang, 창조와 상상력의 원동력

2002년도 나의 비망록 표지에 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질문-탐구(탐색)-해답(質問-探究(探索)-解答), 의문-관찰(관심)-발견(疑問-觀察(關心)-發見). 이 말은 평소 독서를 하거나 상념에 잡혀 있을 때, 또는 무념무상. 멍 때리고 있을 때 등, 그때 그 순간에 떠오르는 것을 수사차록(隨思箚錄法) 하거나, 묘계질서(妙契疾書) 해 제본해 놓은 것이다. 벌써 몇 권째이다.  우린 학교 다닐 때부터 선생님께 왠지 질문하는 것에 머뭇거렸다. 그래서 오직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을 받아 적고 외우면서 선다형의 시험공부에 열중했다. 깨달음을 부르는 호기심이 없어져 파편화된 지식만 습득한다. 사실 유대인들이 노벨상을 많이 받게 된 이유가 질문하는 습관을 가정에서부터 길러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추사 김정희 선생도 제주..

성심(成心)을 해체하고 허심(虛心)으로 돌아가자./홍영수

장자의 의식은 성심(成心)과 허심(虛心)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어떤 관계든, 유대에 의한 것이든 고정되고 불변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그것을 고정적 실체가 있는 시각으로 대상화하는, 무의식적 모방인 미러링(mirroring)의 행위가 성심(成心)이라면, 이 성심을 해체하는 것이 바로 허심(虛心)이다. 붓다도 장자와 비슷한 인식을 하고 있다. 제법무아(諸法無我), 제행무상(諸行無常) 등에서 알 수 있듯이 無는 有를 전제로 하는 사상이다. 말 그대로 空은 대상이 없는 사상이고 선악(善惡), 미추(美醜), 시비(是非) 등의 이분법적인 가치를 벗어난 사고이다. 하나인 것을 이것과 저것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잘못된 사고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붓다와 장자는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성심(成..

삼구홍타(三九紅墮)의 붉은 연꽃, 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홍영수

가부장제, 숨이 막힐 것 같은 유교적 이념 아래 조선 시대 여인들은 죄지은 듯 규중(閨中)에 갇혀 부모 봉양하고 자식을 길렀다. 물론 궁중의 비극을 담은 ‘한중록(閑中錄)과 ‘인현왕후전’ 등은 여인의 붓끝에서 탄생했고, 또한 규방문학 등이 있다. 이 중에 허난설헌은 사대부 집안의 규수였지만 불행한 결혼 생활 등으로 인해 고통을 받으면서도 쓰라린 고통과 아픔을 시문학 작품으로 승화시킨 조선조 최고의 시인이다. 난설헌은 조선 선조 때의 석학인 초당(草堂) 허엽(許曄)의 삼남삼녀(三男三女) 중 셋째 딸로 태어났으며, 위로는 오빠 허성, 허봉, 아래로는 하나뿐인 남동생 허균(許筠)이 있었다. ‘사람은 가도 문장은 남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난설헌은 자신의 모든 글을 불에 태워서 없앨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성..

길상사(吉祥寺)-백석과 자야 길상화로 피어나다./홍영수

1997년에 대원각에서 길상사로 바뀐 이 절은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으며 7,000여 평의 대지 위에 사찰 내의 계곡에는 물이 흐르고 있다. 근대 정치의 한 단면을 보여준 밀실 정치의 대명사였던 3대 요정이 있는데 삼청각, 청원각, 그리고 현재 길상사로 변한 대원각이다. 대원각의 주인이었던 김영한은 법정 스님께 대원각을 시주하면서 그 대가로 달랑 염주 하나 받았다. 현 시가로 천억이 훨씬 넘는 재산이다. 김영한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백석 시인이 사랑했던 여자 김자야(金子夜)로 익히 문학사에 알려진 인물이다. 1916년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서 태어나 일찍 부친을 여의고 가정이 파산하게 되자 조선 권번(기생조합)에 들어가 정악계의 대부 하일규를 스승으로 모시고 진향(眞香)이란 기명을 받았다. 김자야는 195..

죽음, 그 너머의…

인간은 태어나 자신만의 삶의 방식대로 살다가 죽는다. 그 과정은 신체적인 조건과 기능, 장기 역할의 노후로 인한 생로병사(生老病死)일 수도 있고, 또한 예상치 못하고 갑작스러운 사고에 의해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필연적으로 인간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운명적 존재라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는 지위고하, 빈부격차, 남녀노소, 신분의 귀천과는 전혀 상관없이 평등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닥쳐오는 절대적인 운명이다. 다만, 언제 어느 순간에 찾아올지 모르는, 라나(k. Rahner)의 말처럼 “어두운 운명이요, 밤에 찾아오는 도둑”이라고 했듯이 어찌 보면, 인간이라는 생물체의 탄생 이후에 죽음에 대한 사유는 생명과 함께 가장 오래된 예술적 철학적 사유가 아닌가 한다. 서양은 죽음을 ..

우리의 소리, 恨 속의 興

필자의 고향이 남도 지역이어서 판소리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어떤 공연이나 특히 회갑연 때는 남도 잡가나 판소리 단가 등을 많이 듣게 되는데, 옆지기 또한, 판소리를 취미 삼아 활동하기에 함께 공연 다니기도 한다. 판소리 기원에 대해서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마을에서 큰 굿을 하면서 벌이는 판놀음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또한 이러한 놀이 형태에서 소리 광대가 소리와 만담, 재담, 몸짓 등을 하면서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데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기도 하다. 시대는 조선 전기에도 불렸을 것으로 보는데 자료가 없다. 그렇다면, 문헌이 남아있는 조선 영조 시대부터 봐야 할 것이다. 판소리는 지역에 따라 다르게 전승되어 왔다. 섬진강을 중심으로 동쪽의 구례, 순창 등에서 불리는 동편제는 웅장하고 ..

시의 입술에 소리의 색을 바르다.

문학과 음악, 그 어떤 예술이든 우리의 삶과 뗄 수 없는 연결고리로 얽혀 있다. 숲속의 새들과 들녘의 농작물과 흐르는 시냇물, 경로당의 어르신들과 유치원의 어린이 등은 결코 누구에게도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 이유는 현실 속에서 함께 느끼는 감정과 정서 등이 부딪치면서 때론, 공감하고 공유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 낭송 또한 시에서 느끼는 그 어떤 것, 가슴에 와닿은 그 무엇 속에서 자기만의 느끼는 감정과 감성으로 낭송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낭송할 시에 관하여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감상하려면 말러의 시를 읽어야 하고, 판소리를 이해하려면 민초들의 굴곡진 삶의 애환과 고뇌와 통증 등에 공감해야 한다. 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시의 정신세계에 들어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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