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문학 칼럼 99

서원의 효시(嚆矢) 소수서원(紹修書院)

소수서원은 경북 영주시 순흥면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조선 중종 때 풍기 군수 주세붕이 이 지역 출신 성리학자인 안향을 배향하기 위해 설립했다. 그 후 풍기 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이 조정에 사액을 청하여 소수서원이라는 명칭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그리고 안축과 안보가 추가 배향되었다. 소수서원의 설립 배경은 그 당시 향교가 쇠퇴하는 반면 성리학이 융성하던 때이다. 그리고 사림의 성장하는 시기다. 관학인 향교가 많았는데 설립 초기의 목적과 달리 운영과정에서 관리를 양성하는 기구의 성격이 강하다 보니 순수 교육기관의 성격이 퇴색되었고 결국. 관학의 부진은 결국 사학의 발달을 촉진하는 대표적인 사학이 바로 서원이다. 이때가 인간의 이성과 세계의 본질 탐구가 관심사였을 때이다. 고려시대 후반기에..

글쓰기, 마당을 쓸고 정원을 가꾸다 (2)

중, 고등시절이었다. 나만의 자그마한 공부방을 갖고 싶었다. 의자에 앉아 손만 뻗으면 원하는 책을 책꽂이에서 빼내어 읽을 수 있는 공간, 그와 더불어 전축 하나 곁에 있어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책도 보고 글도 써 보고 싶었다. 나만의 공간에서 독서와 음악, 사색과 명상, 한마디로 독락당(獨樂堂) 같은 곳이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신, 특히 노래 가사를 많이 쓰셨던 형님의 영향을 받아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독서와 글쓰기는 깊은 사색에서 우러나온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면서 글쓰기의 마당을 쓸고 닦고, 정원을 손질하고 가꿔놓은 곳에서 사람을 만나도록 한다. 이렇듯 삶과 언어와 글이 만난 글쓰기는 자기의 경험과 체험에 근거한 자기의 언어 행위이다. 작가는 글쓰기가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시..

계단을 오르내리는 의미

오늘날 시대적 상황은 그야말로 초 단위로 변화하는 것 같다. 급발전하는 과학의 영향력을 우리는 매 순간 실생활 속에서 겪고 있다. 몸속에 칩을 넣고, 무엇보다 통신매체의 발달로 AI 활용도가 높고, 정보의 공유 또한 빠르고 신속하다. 이토록 빠른 걸음걸이의 환경에서도 다소 곳 느리게 읊조리며 산책해야 할 이유가 있다. 가끔, 7층 아파트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때가 있다. 비단 필자뿐만 아니라 이웃 주민들 또한 그러하다. 버튼 한번 누르면 신속히 오르내릴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는데도 굳이 한 계단 두 계단을 쉬엄쉬엄 느리게 오르내리는 것은 건강을 위한 수단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한 발 한 발 딛고 서는 계단에서 그 어떤 무엇을 느끼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참신한 생각이 임신 되..

독서 예찬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덕무는 책을 읽다가 눈병을 얻고서도 수많은 독서를 했기에 그를 일러 책만 읽는 바보라는 의미의 ‘간서치看書痴’라 했다. 또한, 나비 그림을 많이 그렸던 화가 남계우는 지극한 나비 사랑으로 그를 ‘남나비’, 혹은 ‘남호접南胡蝶’이라 불리는 벽치였다. 한마디로 그들은 불광불급不狂不及이었다. 젊은 시절 필자는 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의 이니셜을 가져와 ‘데칸쇼’와‘광졸치狂拙痴’등의 닉네임으로 만용을 부리며 스스로 독서 예찬론자가 되었다. ​지금도 집에 있는 시간엔 어느 책이든 손이 가지 않으면 불안감이 든다. 정서적 불안이다. 관심 분야의 책뿐만 아니라, 잠시 또는 오래전부터 눈길, 손길 닿지 않는 책장 한구석에 먼지 쌓인 책들을 일으켜 세운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 그리고 아포리..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에 나타난 물아일체와 융합원리

어느 날 장주(莊周, 莊子)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유유자적 재미있게 지내면서도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 문득 깨어 보니 다시 장주가 되었다. 장주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장주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알 수가 없다. 장주와 나비 사이에 무슨 구별이 있기는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일러 “사물의 물화(物化)라 한다” 의 ‘호접몽胡蝶夢’내용.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生死一如’를 보는 듯 하면서 더 나아가 ‘분별分別’과 ‘무분별無分別’을 생각게 한다. 꿈속의 장주와 나비가 나뉘면 서로 다른 개체이고, 분별하지 않으면 장주와 꿈속의 나비는 똑같이 하나다. 즉 현상적인 측면에서 보면 다양하게 나뉘지만, 본질은 똑같이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장자의..

앙상한 영혼들의 도시적인 삶

한겨울, 설날이면 추위가 정점에 이르는 때인데 인간의 무자비한 소비의 군불 때문에 삼한사온이라는 말은 이미 이상기후에 소멸하고 말았다. 출근길, 어떤 이는 코트 깃을 세우고, 그 곁에는 두꺼운 목도리를 휘두르고서 뭔가에 쫓기는 듯한 얼굴들이 시리디시린 도심의 거리를 걷고 있다. 저들의 걸어가는 표정엔 그 무엇과의 이음표가 없는 단절된 얼굴이다. 하나같이 홀로 걷는 걸음걸이엔 말 줄임표만 매달려 있다. 십수 년 살면서 보는 도시의 풍경임에도 새삼 엄동설한에 느끼는 감정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그리고 다시 한번 도시적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도시적인 삶이 힘들고 피곤해서 오는 것이다. - 시골의 삶이 쉽고 편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시골에 비해 도시에서는 사람들과의 관계 즉, 다양한 ..

망각, 잠시 의식의 문과 창을 닫자

망각? 기억은 좋고 망각은 나쁜 것인가?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과 일들에 부딪힐 때 좋은 일들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나쁘고, 차마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건들에 대해서는 잊고 싶다. 그러나 모든 걸 다 기억한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이러한 측면에서 망각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망각’이라는 단어는 고마운 존재가 아닐까 한다. ‘비움’은 장자 철학의 핵심 키워드다. 여기서 ‘비움’은 부정적인 마음을 해체하는 것이다. 대상에 대해 분별과 편견을 버리고 수용하는 것, 그게 장자가 말한 심재心齋와 좌망座忘이다. 나를 비우고 나를 잊은 마음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의 이치를 터득할 수 있기에 세상이 왜곡되어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꽉 찬 마음을 비우지 않고 주관적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것은 제멋대..

글쓰기, 마당을 쓸고 정원을 가꾸다(1)

글을 써 왔다. 그 과정은 글의 마당을 쓸고 닦고 정원의 수목과 화초를 가꾸는 작업이다. 쉽지 않은 여정이다. 꽃 피울 시기에 맞춰 화초에 물을 주고, 수목을 전지 해 수형을 갖추는 과정이, 글을 짓고 가꾸는 과정이 창작의 과정이라면, 마당의 잡초를 뽑아주고 흙을 북돋우며 고르는 작업은 퇴고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창작과 퇴고의 결과물로 피는 꽃과 맺는 열매의 작품이 있다. 이러한 열매와 꽃들을 소망하는 것은 꽃의 향과 열매의 농익음의 유무를 떠나서 나만의 충족감 때문이다. 비록 독자들에게 다가서는 것일지라도. 이러한 마당에 심어 놓은 다양한 식물과 수목들로 채워진 글의 정원과 마당, 그들이 불 밝혀준 것에 감사하면서 더욱 빛나는 등불을 켜 나가야 한다. 지금 순간에도 자판의 소리는 더욱 조심스..

니힐리즘(Nihilism)의 극복, 위버멘쉬(Übermensch)

현대 사회는 물질문명의 풍요로움과 다양한 대중매체의 발달 등으로 외형적으로는 넉넉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인간의 내면적인 정신적 삶까지 풍요롭지는 않다. 오히려 광대무변한 정보와 지식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기보다는 오히려 절대가치의 상실과 혼란을 겪을 때가 많다. 그런데도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보다 확실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니체는 자신이 살던 시대를 허무주의 시대라고 파악했다. 그는 왜 허무주의라고 판단했을까? 허무주의란 개인을 옭아매고 간섭하는 절대적 가치체계를 벗어나는 것이다. 이유는 그 시대의 절대적 진리나 신이라는 존재가 허구였음을 깨달음으로써 불안과 상실감으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지 못해서 방황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무주의 도래한다고 했다. 니힐리즘(N..

니체, 정신의 세 가지 변화

사회에 첫 발걸음을 내딛는 회사에 입사하고 연수 교육받을 때, 지금도 기억에 남는 강사의 한마디 “negative thinking(부정적 사고)이 아닌 positive thinking(긍정적 사고)의 마인드를 가져라.”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리고 입사 후 중동지역으로 발령받아 근무했다. 그때 지역의 특징인 사막, 특히 그 사막에서 짐을 짊어지고 묵묵히 걸어가는 낙타의 모습을 보았다. 그저 주어진 운명처럼, 당연하다는 듯, 주인에게 복종하면서 불평불만 없이 등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그들의 행렬에서 내 삶을 반추해 보았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철학자, “신은 죽었다.” 했던, 프리드리히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박병덕 옮김, 육문사, 1988.)의 첫 번째 장의 제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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