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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보고 싶다-세월호 사건을 추모하며

엄마!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잖아. 길 중에도 가야 할 길이 있고 가지 말아야 할 길이 있어. 그런데 왜 그들은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갔을까? 그토록 물을 싫어하는 나를 맹골수도(孟骨水道)의 빠른 물속에 차가운 영혼으로 멈춰 있게 하는 거야. 알잖아, 엄마는 물속보다 엄마의 품속이 그립고 물길보다 아빠의 손길이 필요하고 펼쳐야 할 꿈이 망망대해인 나를. 아직 더 높이 올라가야 할 욕망의 하늘이 있고 더 멀리 달려야 할 희망의 지평이 있고 더 크게 울려야 할 가슴의 종이 있다는 것을. 멋진 추억을 쌓기 위해 떠났던 새벽길에 도란도란 모여 얘기꽃 피워야 할 친구들이 아직도 환상 속에 꿈을 꾸는 듯 내 곁을 둥둥 떠다니고 있어요. 눈동자는 움직임이 없고요. 세상의 모든 신에게 마지막 기도를 했던 친구들 그들의..

나의 시 2024.04.05

서원의 효시(嚆矢) 소수서원(紹修書院)

소수서원은 경북 영주시 순흥면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조선 중종 때 풍기 군수 주세붕이 이 지역 출신 성리학자인 안향을 배향하기 위해 설립했다. 그 후 풍기 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이 조정에 사액을 청하여 소수서원이라는 명칭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그리고 안축과 안보가 추가 배향되었다. 소수서원의 설립 배경은 그 당시 향교가 쇠퇴하는 반면 성리학이 융성하던 때이다. 그리고 사림의 성장하는 시기다. 관학인 향교가 많았는데 설립 초기의 목적과 달리 운영과정에서 관리를 양성하는 기구의 성격이 강하다 보니 순수 교육기관의 성격이 퇴색되었고 결국. 관학의 부진은 결국 사학의 발달을 촉진하는 대표적인 사학이 바로 서원이다. 이때가 인간의 이성과 세계의 본질 탐구가 관심사였을 때이다. 고려시대 후반기에..

글쓰기, 마당을 쓸고 정원을 가꾸다 (2)

중, 고등시절이었다. 나만의 자그마한 공부방을 갖고 싶었다. 의자에 앉아 손만 뻗으면 원하는 책을 책꽂이에서 빼내어 읽을 수 있는 공간, 그와 더불어 전축 하나 곁에 있어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책도 보고 글도 써 보고 싶었다. 나만의 공간에서 독서와 음악, 사색과 명상, 한마디로 독락당(獨樂堂) 같은 곳이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신, 특히 노래 가사를 많이 쓰셨던 형님의 영향을 받아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독서와 글쓰기는 깊은 사색에서 우러나온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면서 글쓰기의 마당을 쓸고 닦고, 정원을 손질하고 가꿔놓은 곳에서 사람을 만나도록 한다. 이렇듯 삶과 언어와 글이 만난 글쓰기는 자기의 경험과 체험에 근거한 자기의 언어 행위이다. 작가는 글쓰기가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시..

계단을 오르내리는 의미

오늘날 시대적 상황은 그야말로 초 단위로 변화하는 것 같다. 급발전하는 과학의 영향력을 우리는 매 순간 실생활 속에서 겪고 있다. 몸속에 칩을 넣고, 무엇보다 통신매체의 발달로 AI 활용도가 높고, 정보의 공유 또한 빠르고 신속하다. 이토록 빠른 걸음걸이의 환경에서도 다소 곳 느리게 읊조리며 산책해야 할 이유가 있다. 가끔, 7층 아파트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때가 있다. 비단 필자뿐만 아니라 이웃 주민들 또한 그러하다. 버튼 한번 누르면 신속히 오르내릴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는데도 굳이 한 계단 두 계단을 쉬엄쉬엄 느리게 오르내리는 것은 건강을 위한 수단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한 발 한 발 딛고 서는 계단에서 그 어떤 무엇을 느끼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참신한 생각이 임신 되..

시인의 시視 / 홍영수

23.5도 기울어야 밝고 어두운 길이 놓이듯 꽉 쥐어짠 빨래같이 시視의 초점도 비틀어져야 전복된 은유가 바로 선다. 누구 하나 일으켜 세워 주지 않아도 하루에 한 바퀴 비켜선 중심의 자전으로 밤낮의 길이 열리듯 휘어진 눈동자로 정신의 세포를 찾고 기울어진 시각으로 상징의 숲속을 헤매어야 찾을 수 있는 한 잎의 詩. 물음표를 찾다 물음표조차 묻게 하는 뒤틀린 視. -----------------------------

나의 시 2024.03.06

독서 예찬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덕무는 책을 읽다가 눈병을 얻고서도 수많은 독서를 했기에 그를 일러 책만 읽는 바보라는 의미의 ‘간서치看書痴’라 했다. 또한, 나비 그림을 많이 그렸던 화가 남계우는 지극한 나비 사랑으로 그를 ‘남나비’, 혹은 ‘남호접南胡蝶’이라 불리는 벽치였다. 한마디로 그들은 불광불급不狂不及이었다. 젊은 시절 필자는 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의 이니셜을 가져와 ‘데칸쇼’와‘광졸치狂拙痴’등의 닉네임으로 만용을 부리며 스스로 독서 예찬론자가 되었다. ​지금도 집에 있는 시간엔 어느 책이든 손이 가지 않으면 불안감이 든다. 정서적 불안이다. 관심 분야의 책뿐만 아니라, 잠시 또는 오래전부터 눈길, 손길 닿지 않는 책장 한구석에 먼지 쌓인 책들을 일으켜 세운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 그리고 아포리..

거울 같은 시/홍영수

https://www.youtube.com/watch?v=tcIqXlX1QzQ 거울 같은 시/홍영수 컴컴한 생의 새벽길에 방향 잃은 나의 이정표가 되어주고 바큇살 빠져 삐거덕거리는 마차처럼 고장 난 내 영혼을 수리해 줄 시 거울 하나. 생각을 갈아엎어 깊이를 더해 주고 반사된 빛이 오목한 곳에 모여 불씨를 피우는 것처럼 한곳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 사물의 꽃을 피우게 해 주는 오목거울 같은 시를, 때로는 반사된 빛이 퍼져나가 보이지 않는 곳을 보이게 하고 세상 밖의 세상을 만나게 해 주어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의 삶을 살게 해 주는 볼록거울 같은 시를, 그렇게 비춰 주는 시 거울 하나 가슴에 걸어 두고 싶다.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카테고리 없음 2024.02.23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에 나타난 물아일체와 융합원리

어느 날 장주(莊周, 莊子)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유유자적 재미있게 지내면서도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 문득 깨어 보니 다시 장주가 되었다. 장주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장주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알 수가 없다. 장주와 나비 사이에 무슨 구별이 있기는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일러 “사물의 물화(物化)라 한다” 의 ‘호접몽胡蝶夢’내용.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生死一如’를 보는 듯 하면서 더 나아가 ‘분별分別’과 ‘무분별無分別’을 생각게 한다. 꿈속의 장주와 나비가 나뉘면 서로 다른 개체이고, 분별하지 않으면 장주와 꿈속의 나비는 똑같이 하나다. 즉 현상적인 측면에서 보면 다양하게 나뉘지만, 본질은 똑같이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장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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