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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향기-월정사 전나무 숲길 / 강수경

온 우주의 문을 활짝 열어 놓은 듯한 ‘월정대가람月精大伽藍’ 일주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산도産道를 뚫고 태어난 것인지 한 알 씨앗이 된 것인지 수행자의 상아詳雅한 비질이 품은 숨결 맨발로 전해져 오는 다지고 다져진 연한 흙의 기운 살과 살이 맞닿는 부드럽고 상쾌한 몸살 하늘 향해 뻗은 아름드리 전나무 숲을 침묵 수행자 되어 걷노라면 온몸에 푸른 물이 들어 나는 한 그루 나무가 된다 금강교 밑으로 흐르는 우통수 계곡물 소리 넉넉히 품는 사람 되라는 설법처럼 들리고 아리도록 차가운 물에 세족洗足하고 숲길을 돌아 일주문에 닿으면 순풍, 천년 향기로 세상에 던져진다 *계간 미래시학 등단 *한국작가회의 회원/ 한국작가회의 부천지부 회원 ------------- 필자는 사찰 답사를 자주 하곤 하는데, 어느 해 ..

나의 시 평론 2023.11.28

인간관계론 / 박수호

반추(反芻)의 시학 필자는 농부의 아들이었다. 당시 소는 대학 등록금이었으며 농사 밑천이었다. 논밭 갈이 온종일 하고 돌아온 소에게 소죽을 끓여 주면 다 먹고 난 뒤 가만히 앉아 되새김한다. 그 모습은 평화로움 그 자체다. 소의 주식은 다양한 풀이다. 일과를 끝내고 난 뒤 위 속에 저장된 풀의 종류를 하나하나 되새김질하며 풀 맛, 즉 의미를 곱씹고 소화 시키는 모습이 선정에 든 큰 선승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박수호 시인의 연작시‘인간관계론’을 ‘반추(反芻)의 시학’이라 하고 싶다. 왜냐면 눈으로는 쉽게 읽히지만, 눈을 떼는 순간 눈을 감게 만들어 내가 뭘 봤지? 하며 사색에 잠기게 한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의문부호에도 물음표가 붙으며 시작이 있되 마침표가 없다. 그러므로 또..

나의 시 평론 2023.11.24

연기법 – 생각하라 그리고 깨달아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렇기에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생활하며 가족, 회사 그리고 다양한 성격의 집단 속에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그러면서 인맥, 학맥, 혈맥 등의 차이와 갈등에서 오는 불평과 불만을 맞게 되기도 한다. 특히 개인의 사리 판단과 고정불변의 사고로 타인의 인격을 모독하고 아전인수격으로 재단하는 경우엔 그 어떤 이해관계를 떠나서 심각한 갈등을 초래한다. 누구든 경험했던 일이지만, 실제로 부딪혔을 때는 생각보다 커다란 좌절을 느끼고 상처를 입기도 한다. 이처럼 타인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고 고통받게 하는 행위는 아상我想이 있기 때문이다. 즉 이 몸과 마음이 ‘나’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아상’을 가지고 남과 맞서고 대립하며 나만 옳고 너는 그르다는 이분법적인 사고 때문이라고 한다..

동짓달 기나긴 밤에 / 황진이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어른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기다림은 행복을 찾는 순간일까, 누굴 저리도 애타게 기다릴까. 사박사박 눈을 밟으며 임이 오지 않을까? 성엣장 같은 차가운,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짓날 밤은 깊어 가는데∙∙∙… 송도삼절의 조선 최고의 여류시인 황진이, 밤중에 가슴에서 부화한 그리움 한 줌 안겨준 그이는 하룻밤 풋사랑 아님, 정주고 떠난 풍류객의 사대부는 아니었을까? 행여 그 임이 언제 올지 몰라 기나긴 밤의 시간을 한 토막 잘라낸다니, 얼마나 겨울밤 동치미 같은 맛 난 표현인가.   그 시간을 봄바람 같은 따스한 이불 아래 넣어두었다가 사랑하는 임이 오거든 펴 드린다니, 이토록 으늑한 정성, 장작불에 달궈진 사랑방 구들장인들 이..

나의 시 평론 2023.11.17

訪曹處士山居(방조처사산거)- 박순(1523~1589)

醉睡仙家覺後疑 (취수선가각후의) 취해 자던 신선 집 깨어보니 의아하다 白雲平壑月沈時 (백운평학월침시) 흰 구름은 골 가득 메우고 달이 지는 새벽녘 翛然獨出脩林外 (소연독출수임외) 주인 몰래 혼자 나와 긴 숲길 벗어나니 石逕筇音宿鳥知 (석경공음숙조지) 돌길에 지팡이 소리 자던 새에게 들켰네. 술 취한 후 희미하게 눈을 뜨니 너붓한 반석이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으늑한 장면, 좋은 벗과 주거니 받거니, 달무리로 주안상 차리고, 솔잎 향 몇 방울 술잔에 떨어뜨리며 명지바람에 실려 온 실솔(蟋蟀) 울음소리로 세속의 찌든 귀 헹구면서, 맴도는 흰 달빛도 초대한 깔축없는 분위기에 실컷 마시고 쓰러졌다. 깨어보니 널부러져 있는 술상 앞에 주인은 쓰러져 코를 골고 주변을 살펴보니 골을 메운 흰 구름 雲海를 이뤘다. 밤새..

나의 시 평론 2023.11.16

달마산 도솔암 / 홍영수

도솔암에 와서는 묵언의 수행자가 아니면 한 걸음도 나아 갈 수 없다. 암자를 둘러싼 바위는 말이 없다. 말이 없으니, 고요가 귀를 씻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바위 틈새를 메운 돌멩이에 귀 기울여본다. 울력했던 보살들 땀방울 흘러내린 소리와 한 칸의 절간, 스님의 염불 소리를 풍경風磬이 주워 모아 소리 꽃을 피운다. 처마와 닿을 듯한 늠연한 고목 한 그루가 낡삭은 절집을 안고 소리 없이 툭 던지는 이파리 하나 의상대사의 화두가 되어 불전 앞에 툭 떨어져 앉는다. 말 없는 달마산의 바위너설에서 오묘한 진리 한 자락 휘감지 못했지만 암자를 에워싼 바위 결에 흐르는 노승의 목탁 소리에 몽매한 귀가 확 뜨이며 맥맥한 속내를 확 트이게 한다. 침묵이 숨죽이며 침묵하는 도솔암 미망의 중생에게 내리친 무언의 죽..

나의 시 2023.11.10

진리의 문을 가기 위한 우상(偶像) 타파의 길

https://www.cosmiannews.com/news/251242 [홍영수 칼럼] 진리의 문을 가기 위한 우상(偶像) 타파의 길 - 코스미안뉴스우린 다양한 생각과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간다. 얼마 전, 친구들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친구는 어떤 분을 우상처럼 여기면서, 그 사람의 권위와 전통에 절대적 믿음을 갖고www.cosmiannews.com 우린 다양한 생각과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간다. 얼마 전, 친구들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친구는 어떤 분을 우상처럼 여기면서, 그 사람의 권위와 전통에 절대적 믿음을 갖고 의지하며, 그 어떤 비판과 거부감 없이 그야말로 맹목적으로 맹신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자기만의 주체적 사상과 이론도 없이 무조건 추앙하는 그..

일백 년 영산홍 / 우윤문

내가 사는 동대문구 용두동에 명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일백 년 된 진분홍 영산홍이다. 이 꽃나무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주먹만 한 크기의 꽃송이로 나무를 호화롭게 장식해 탐스럽고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천연 그대로 진분홍 빛의 화사함은 보는 사람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땅속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붉은색 고무통 안에서 자라고 있음이다. 나무는 일곱 개 굵은 줄기가 고무통 속에서 올라와 수십 가지로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가고 있다. 폴리카보네이트 소재의 투명지붕을 뚫지 못해 공간이 여유로운 오른쪽으로 가지들을 모으면서 꽃을 피워 꽃지붕을 만들고 있다. 비대칭으로 커 가는 모습은 이 나무의 멋을 더해 장관을 이뤄 예술적 가치를 높여 주고 있다. 꽃나무 주인은 한의원 원장님이다. ..

나의 글 外 2023.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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