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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 고난과 역경에서 피어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고난과 역경이 클수록 어딘가에 기대고 싶고 매달리고 싶다. 사실 인간은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행복지수가 높아질 것 같은데 오히려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살아가는 과정에 고난과 역경을 겪게 되고, 이웃과 타인들에게서 때론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이러한 아픔과 상처를 겪고 입게 될 때 문학과 예술이 참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특히,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면서 더욱 그러하다. 이럴 때일수록 그냥 묻고 잊기보다는 좀 더 근원적인 질문을 하면서 돌파구를 찾고 방향성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누군가의 시집 한 권, 어느 자그마한 음악회, 인사동 골목길 어귀에 있는 자그마한 화랑, 늦가을 정취를 읊조리는 시낭송회 등에서 자신만의 시간과 생각을 가지고 먹고사니즘에..

고향이 되리/홍영수

고향이 되리 그리움마저 아끼고 싶을 때 황톳길 따라 걷다가 돌부리에 부딪히는 검정 고무 신발이 되리 향수가 긴 팔 벌려 안아주는 곳 구불구불 흙먼지 길 동구 밖 돌아서며 내 안을 걸어가는 길이 되리, 동무가 되리 바람 불어 찢어진 비닐우산 낮게 쓰고 어깻죽지에 책보를 가로 메고 뛰어가는 학교가 되리, 공부가 되리 나였던 나는 어디 갔을까 너였던 너는 어디 갔을까 담쟁이는 돌담에서 여전히 꿈을 꾸고 초가지붕은 지금도 하양 박꽃을 기다리는 곳 돌담을 스치는 바람의 꿈이 되리 박꽃에 물들어 반짝이는 은하수가 되리 온몸에 사리로 박힌 향수(鄕愁)가 먼발치 굴뚝에서 눈물로 피어오르는 곳 정든 그리움이 되리, 그리움의 품이 되리. 비의 숨결과 바람의 손결이 스며든 마루판이 홀로 된 할머니의 말투보다 더 느리게 표정..

나의 시 2022.11.06

긴 이별/홍영수

울컥 치솟는 보고픔에 끊어지는 애간장 멍울진 아린 마음 어찌할까나 이 설움을 노을빛에 젖어 낙엽은 지는데 글썽이는 두 눈에서 숙명처럼 짓는 눈물 꿇은 무릎 위에 모은 손등에 떨어지는데 옷깃 여민 그리움을 바짝 당겨 다잡아도 파고드는 애달픔 차갑게 느껴오는 너의 삭신 어찌할까나 시린 이 가슴을 너무 이른 긴 이별을 단념하듯 가누어도 흐트러진 나의 영혼

나의 시 2022.11.06

발견을 통한 의미 찾기와 동심을 일깨우는 마음의 눈

홍영수(시인, 문학평론가) 현대문학의 시작으로 보는 육당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소년』 창간지( 1908.11.1) 권두시로 발표된 11월 1일을‘동시의 날(2008)’로 정했고, 올해로 동시의 날 선포 13주년이 되는 해에 임내영 시인의 동시집『요리요리』를 읽었다. 어른의 관념과 자기 추측이나 회상만이 아닌, 어린이의 감성과 상상력을 북돋아 주고 자연과 동물에 대한 세심한 관찰, 할머니에 대한 동경과 사랑, 그리고 자기 체험적 요소들이 표출된 시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거기엔 다양한 색채의 동심이 채색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좋은 작가는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은 더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임내영 시인이 그렇다. 시는 산문과 다르게 연과 행이라는 압축된 형식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장르이다. ..

삶의 의미에서 발견한 감동의 시학

홍영수(시인, 문학평론가) 시집 한 권은 시인의 인생역정에서 건져 올린 정신적 삶의 총체적인 발화 형식이다. 한 시인의 작품에는 작가 인생에 대한 특별하고 유별난 성향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스며들게 마련인데 특히 소재 선택이나 수사적 특징 등에서 그렇다. 사실 해설자는 스스로 발견자가 되어야 한다. 시인이 시 쓰는 행위 자체가 사물과 인생에 함축된 새로운 의미의 발견이기 때문이다. 이재학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그만이 선호하는 주제의식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잊혀가고 지워지는 자연관 속 고향에 대한 향수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 그리고 가장 두드러지는 모정에 관한 주제의식이다. 그리고 그만의 사유의 씨앗으로 꽃을 피워 시집의 열매를 맺고 있다. 시인의 고향 사랑은 표제시「소사천」 을 비롯해서 1부의 ..

두 딸에게/홍영수

날마다 새로워지기 위해서 날마다 떠나야 한다 머무는 삶이 아니라 떠나는 삶. 네모의 액자 속 그 안에 낀 한 폭의 그림이 되지 말고 그곳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와 창밖을 바라보라, 그리고 한 조각 뜬구름과 벗이 되어 얘기하라 습관이라는 의자에 앉지 말고 안락이라는 침대에 눕지 마라 광활한 대지에서 발길 닿는 데로 뛰어다니는 야생마처럼 살 곳 찾아 옮겨 다니는 유목민이 되어라. 때론 불안하기도 하고 위험할지라도 익숙한 굴레에서 박차고 뛰쳐나와 너의 고정된 틀을 과감히 파괴해라 유유히 흐르는 물살을 타지 말고 거친 물살을 거스르는 물고기가 되어라.

나의 시 2022.11.04

존재의 꿈을 꾸다/홍영수

난 외롭다 늘 푸른 동해 땅끝에 우뚝 서서 해돋이 해넘이를 함께 하며 어부와 새들을 위한 홀로 선 등대이기에 난 슬프다 거친 풍랑과 귀때기를 때리는 바람을 안고 억수 세월 뜬눈으로 저 먼 백두대간 바라기를 하기에 난 아프다 일렁이는 큰 파도 같은 거짓 입술과 거센 바람의 억지스러운 몸짓 언어로 정절의 두 발로 서 있는 나를 괴롭히기에 난 괜찮다 수많은 세월, 터럭만큼의 몸도 허락하지 않았고 여태껏 티끌만큼의 눈 한 번 팔지 않는 지조로 존재의 꿈을 꾸었기에, 침묵 속 침묵으로.

나의 시 2022.11.03

한복의 선線/홍영수

선線이 소리가 된다. 동정은 메기고 깃이 받을 때 앞도련은 겨드랑이 밑으로 숨어들어 진양조장단이 되고 배래선은 너름새를 하며 곡조가 되어 선으로 창을 한다. 하늘을 나는 듯 신명 난 저고리 곁마기와 끝동은 춤을 추고 삼회장의 사뿐사뿐한 소리에 두 옷고름은 빗장고름의 엇박자로 음표를 드레드레 매달고 앞섶과 치마 사이에서 아니리를 하니 삼작노리개가 얼쑤 하며 한바탕 추임새를 한다. 쪽빛에 살짝 피어오른 외씨버선 상큼하게 들린 버선코와 신코가 마음 자락 비집고 들어와 선의 무리로 만나서 병창을 할 때 한 가락 선의 언어는 소리가 되어 흐른다 있는 듯 없는 듯 꿰비치는 주머니 얼비친 분홍빛 속치마가 수줍어하는 사이 선의 얼개로 짠 치마저고리의 시김새 선들이 눈대목이 되어가면서 선線은 명창이 된다.

나의 시 2022.11.03

삼강체(三江體)*로 쓴 외상장부/홍영수

정지문을 열면 연기에 그을린 벽지에는 누구도 해독할 수 없는 삼강체의 상형 문자가 그려져 있고 노 젓던 사공의 슬픈 가락과 보부상의 총총걸음의 외상값이 지우고 다시 쓴 가느다란 칼끝의 필획으로 쓰여있다. 연기에 그을린 정기의 벽에는 주전자 연적의 텁텁한 물을 뚝배기 벼루에 붓고 간간하게 배인 소금장수 땀의 먹으로 갈아 쓴 행간 속 외상장부가 농담의 붓으로 괴발개발 갈겨놓았다. 시끌벅적한 삼강주막에서 고단했던 그들이 하루를 안주 삼아 피로를 마실 때 늙마의 주모는 비워지는 주전자의 개수를 벽지에 새긴다. 칼끝 붓으로 휘갈긴 갈필의 메마른 삶일지라도 자오록한 연기에 그을린 먹빛 정지에서는 삼강체라는 주모만의 서체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앞치마처럼 구겨져 힘들고 고된 하루지만 그만의 운필력으로 붓을 잡고..

나의 시 202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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