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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익 미소와 서산 마애삼존불

인간은 본래 호모 에스테티쿠스 즉, ‘예술적 인간((homo estheticus)이면서,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이다. 그래서일까 예술과 종교는 긴밀히 교차하고 융합하면서 긴 예술 역사의 흐름을 형성해 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인간은 삶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과 우주적, 영적인 그 무엇과 교신하고 공유하기도 한다. 동물의 갇힌 세계와는 달리 열린 세계에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술의 원천은 종교적 경험과 깊은 관련이 있다. 종교의례 중에 춤과 노래, 그림 등, 그리고 주술적인 것들에 대한 이미지에 대응하는 한 방식으로 잉태된 것이 예술이기도 하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예술과 종교의 양태상의 차이를 밝힘과 동시에 “예술적 의식과 ..

독락(獨樂)의 공간/홍영수

병산서원 머슴의 뒷간은 스스로 그러하다. 문이 없다. 산천 어디에 문이 있었던가. 문 없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된다. 헛기침은 한 번이면 족하다. 덤으로 한 번 더 해도 된다. 없는 문 여는 것에 대한 예의다. 자연은 품이 넓지 않은가. 지붕은 지붕 위로 날아가고 없다 강산은 처음부터 열린 공간이었다. 환기창도 없다. 태초부터 자연은 청정했다. 그래서 환기할 게 없어 없다. 가끔, 강 건너 병풍산이 들락거릴 뿐. 머슴의 뒷간, 통시(便所)는 홀로 즐기는 공간이다. -------------------------------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

나의 시 2022.12.04

복사꽃/홍영수

눈으로 당기면 고즈넉이 다가온 향 사르르 코끝을 스치고 고울사 고운 꽃잎 윤슬에 아롱지며 눈부시어라. ------------------------------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지하철 7호선 신중동역에 게재된 시

나의 시 2022.12.03

에곤 실레

에곤 실레 -광기에 찬 비틀리고 뒤틀린 미학 에곤 쉴레 Egon Schiele, 1890-1918, 당시 민족 구성이 가장 복잡한 나라, 오스트리아 도나우 강변 툴른에서 태어난 표현주의 화가이다. 1906년 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해서 스승이친구 같았던, 당시 아르누보(Art nouveu)의 영향을 받으며 ‘빈 분리파’를 이끌었던 클림트에게 인정을 받았고, 28세로 요절할 때까지 세기말의 혼돈과 불안, 성에 대한 강박감과 죽음 등을 거칠고 에로틱한 화풍으로 담아냈던 천재성을 지닌 화가였다. 그는 3천여 점에 이르는 드로잉과 약 3백 점에 이르는 회화를 남겼다 대표작으로 , , , 등 수 많은 작품이 있다. 19세기 말, 무려 650년간 이어져 온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가 와해하면서 황실과 귀족 중심의 문..

나의 雜論直說 2022.12.02

멕시코 페미니즘의 초상(肖像), 프리다 칼로

여성의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19기 산업혁명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여성의 성에 대한 차별은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히 진행해 왔다. 미국의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Linda Nocklin)은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는가?』를 발간해서 사회적인 여성 문제에 대해 언급하며 페미니즘 논쟁을 촉발했다. 남성 예술가들보다 여성에게는‘여류화가’,‘여류시인’ 등, ‘여성’이라는 단어를 붙여 지칭하고 있다. 물론 지금도 관습적으로 그러한 경향이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여성은 사회적 지위 앞에 성차별적인 생물학적 성의 수식어를 붙이는 것일까. 한 예를 들면,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일기로 쓴 책『나는 천재다』에서 천재 미술가 10명을 선정했다. 그러면서 천재 미술가가 존재하지 않은 이유를 “여성..

엄마의 가을/김옥순

틀니를 두고 놀러 나갔다 종일을 잇몸으로 살고 저녁 식탁에도 잇몸으로 앉는다 공원에 간다고 부채는 한 보따리 챙기고 옷은 반소매 위에 가을옷 모자 밑으로 땀방울이 주르르 염색은 아흔여섯까지 하겠다더니 아직 아흔셋인데 말이 없다 밥을 한 끼니도 안 먹었다고 난처하게 하고, 꼭 챙기던 용돈도 이제는 챙기지 않는다. 시집 . ---------------------------- ‘엄마의 가을’ 詩題에서 슬픔이 묻어난다. 여성은 생물학적 性이다. 여성과 남성 외에 또 하나의 性을 정의 하고 싶다면 필자는 당연히‘엄마의 性’, 즉 ‘母性’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정의된 여자로서의 성이 아닌 모성은 여자의 성을 초월한, 그 무엇으로 한정시킬 수 없는 ‘엄마의 성’이다. 어쩜 모성이라는 말 그 자체로도 표현할 수 없는..

나의 시 평론 2022.11.29

마당을 쓸며/박미현

촛불이 타고 있는 새벽 산사 빈 마당에 비질을 한다 젊은 스님이 다가와 무얼 쓸고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무엇을 쓸고 있는 것이 아니라 쓸고 있는 행위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멋쩍게 대답을 한다 비질을 할 때마다 잔돌이거나 박힌 잎이거나 흙먼지거나가 벌떡, 벌떡 일어선다 백팔번뇌가 십팔번 뇌로 떠오르던 법당! 비질이 지나간 자리마다 죽비를 맞은 것 같다 시집 --------------------------------- 부처가 성불하고 맨 처음 가르친 것이 바로 네 가지 진리와 여덟 겹의 길이다. ‘苦集滅道’와‘八正道’이다. 고집멸도의 네 가지 진리란 우리의 삶은 괴롭고. 그 괴로움은 집착에서 오고, 그 집착을 끊어야 할 길, 그게 바로 팔정도이다. 어쩜 시인은 속애(俗埃)에 지친 삶의 괴로움과 번뇌의 일상..

나의 시 평론 2022.11.28

갈대밭/홍영수

저 하이얀 웃음들 비워서 가벼운 것들의 하늘거림 갈바람 줄을 켜면 생각은 마음 따라 일어나고 바람 따라 달려가는 신명 나는 또래들의 티 없이 넉넉한 싱싱한 놀이판을 보라. 수렁 이랑에 푸른 몸 올올 세우고 파도 소리와 바람결에 흔들리고 일렁이는 은빛 조각들의 어울림 미틈달 어슬녘, 활짝 핀 같대 꽃밭에 노을이 슬며시 둥지를 틀고 지친 철새들이 깃을 내릴 때 잠시 호흡을 고른 갯벌의 게들 얼마나 아름다운 빈 가슴들의 너나들인가. 파도의 들숨 날숨에 소금기 머금은 가냘픈 몸짓 오가는 이 눈길 담으려 하지 않는 외딴 바닷가 간들바람에 새살거리는 가녀린 잎들 텅 빈 관절 마디로 공명하는 한 울림의 자유.

나의 시 2022.11.27

구멍/구정혜

썰물이 나간 사이 갯벌에 크고 작은 구멍들이 있다 작은 게 한 마리 찰진 흙 온몸에 뒤집어쓰고 구멍을 파고 있다 산다는 것은 구멍을 내는 일 구멍만큼이나 자기 세상이다 책잡히지 않으려고 완벽을 노력했지만 내 마음 뒤집어 보면 곳곳에 구멍 투성이다. 그곳으로 바람도 들어오고 햇볕도 파고들고 친구도 왔다 간다 더러는 달도 제 짝인 듯 넌지시 맞춰 보는 _ 芝堂 구정혜 시인 -------------------------- 필자는 겨울 바다를 좋아한다. 이유는 없다. 다만, 북적거리는 여름 해변보다는 한적해서 홀로 걸으며 썰물 때 드러난 갯벌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생명들, 날아든 조류들, ‘드러냄과 들어옴’의 드나듦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시인은 썰물의 갯벌에서 게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 작은 집게발로..

나의 시 평론 2022.11.25

틈새의 삶/홍영수

한적한 시골길의 시멘트 포장도로 숨구멍처럼 갈라진 틈새로 들꽃들이 자라고 있다 누구의 손길, 눈길도 없다. 타는듯한 목마름의 줄기는 잎끝에 맺힌 해울로 적시고 여리디여린 꽃잎은 햇빛 한 올의 눈짓에 하늘하늘 웃는다. 사이와 사이에서 때론, 베이고 뽑히는 경계에서 한낱 이름 없는 들꽃일지라도 연민의 눈짓엔 고개를 돌리고 관심의 손짓엔 냉담이다. 내가 낮춰 너를 피우고 네가 높여 나를 터뜨리니 한 줌 향기 길손의 옷깃에 스며들고 네 곁에 내가 서서 너를 꼭 껴안고 내 앞엔 네가 앉아 나를 손 잡으니 비좁은 틈새로 하늘이 포개진다.

나의 시 202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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