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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成心)을 해체하고 허심(虛心)으로 돌아가자./홍영수

장자의 의식은 성심(成心)과 허심(虛心)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어떤 관계든, 유대에 의한 것이든 고정되고 불변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그것을 고정적 실체가 있는 시각으로 대상화하는, 무의식적 모방인 미러링(mirroring)의 행위가 성심(成心)이라면, 이 성심을 해체하는 것이 바로 허심(虛心)이다. 붓다도 장자와 비슷한 인식을 하고 있다. 제법무아(諸法無我), 제행무상(諸行無常) 등에서 알 수 있듯이 無는 有를 전제로 하는 사상이다. 말 그대로 空은 대상이 없는 사상이고 선악(善惡), 미추(美醜), 시비(是非) 등의 이분법적인 가치를 벗어난 사고이다. 하나인 것을 이것과 저것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잘못된 사고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붓다와 장자는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성심(成..

울림을 향해서 / 홍영수

그곳엔 울림이 있다 출발지점에 몇 갈래 길, 현미경 들여다보듯 익숙함에 젖은 길이다. 그 길을 벗어나 걷고 걸으면 이내 길은 끊기고 발길은 새로운 길을 내며 걸어야 한다. 그 길은 낯설고 두렵다. 일상의 시선과 후각은 허락되지 않는다. 길은 똑바로 걸을 수 없다. 한 고지 올라선다. 너덜지대의 돌은 날을 세우고 초목은 몸을 낮춘다. 새들은 죽지를 접고 고도를 낮추며 물은 흰 구름을 안고 굽이대로 흐른다. 암벽만큼 가파른 숨소리 앞에 얼핏 다가선 노루막이. 출발 때의 시야가 깜짝 놀란다. 천 만근 발걸음은 구름 위를 걷고 가까워진 하늘이 고개를 끄덕이며 방긋 웃는다. 뒤돌아 지나온 길을 뒤 돌아본다. 울림은 오르는 자의 발걸음 소리만큼 울릴 뿐 울림을 위해 울지는 않는다. ------------------..

나의 시 2023.05.06

삼구홍타(三九紅墮)의 붉은 연꽃, 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홍영수

가부장제, 숨이 막힐 것 같은 유교적 이념 아래 조선 시대 여인들은 죄지은 듯 규중(閨中)에 갇혀 부모 봉양하고 자식을 길렀다. 물론 궁중의 비극을 담은 ‘한중록(閑中錄)과 ‘인현왕후전’ 등은 여인의 붓끝에서 탄생했고, 또한 규방문학 등이 있다. 이 중에 허난설헌은 사대부 집안의 규수였지만 불행한 결혼 생활 등으로 인해 고통을 받으면서도 쓰라린 고통과 아픔을 시문학 작품으로 승화시킨 조선조 최고의 시인이다. 난설헌은 조선 선조 때의 석학인 초당(草堂) 허엽(許曄)의 삼남삼녀(三男三女) 중 셋째 딸로 태어났으며, 위로는 오빠 허성, 허봉, 아래로는 하나뿐인 남동생 허균(許筠)이 있었다. ‘사람은 가도 문장은 남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난설헌은 자신의 모든 글을 불에 태워서 없앨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성..

정현우 시집『내가 머무는 세상』, 비전북하우스, 2023.

탐구적 미의식과 질박한 서정성의 시학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정현우 시인의 80여 편 남짓 원고를 탐독했다. 그의 시 세계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일상성을 최대한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성적이거나 논리적 예리함, 지적인 주장보다는 몸소 체험과 경험에서 체득한 감성을 통해 대상과 교감하고 소통하고 있다. 그래서 시적 정조가 부드럽고 따뜻하면서 온유한 느낌의 미적 감응으로 다가온다. 특히 그의 시상은 자연의 현상 속 꽃과 비 등의 시편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발견하고 있다. 특히 애달픈 모정에 대한 그리움과 술에 대해서는 남다른 의미와 깨우침을 술잔에 담아 마시면서 자의식을 내면화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이러한 시상을 감각적으로 표출하면서 정감 가는 시인만의 시어와 산뜻한 리듬감, 그리..

망각의 풍경 / 홍영수

마실 다녀온 할머니 지팡이 뒤로 달그림자 딸랑딸랑 뒤따른다. 달빛 가루 분칠한 흰 고무신의 인기척에 반쯤 기운 사립문이 삐거덕 열리고 머리카락에 흩뿌린 별빛도 가만가만 들어선다. 종일 외로웠던 안방의 아랫목이 문지방을 엎드려 넘는 홀몸을 벌떡 일어나 반긴다. 창호에 비친 나풀나풀한 댓잎의 몸짓을 눈짓으로 잡아당겨 베개 삼아 누울 때 뒤뜰 된장독의 곰삭는 소리에 텃밭의 풋고추들이 놀란 듯 흔들거리고 깨물어 아픈 손가락을 떠올릴 때 벽에 걸린 액자 속 미소들이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허리 곧은 시절에 미처 듣지 못했던 바래고 숨죽였던 빛과 소리가 저물어 가는 생의 귀퉁이에 보이고 들리면서 은밀한 물보라를 일으켜 눈과 귀를 덮친다. 홀몸은 평상복인 고요를 고요롭게 벗으며 망각의 풍경 조각들을 다문다문 주워 모..

나의 시 2023.04.28

길상사(吉祥寺)-백석과 자야 길상화로 피어나다./홍영수

1997년에 대원각에서 길상사로 바뀐 이 절은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으며 7,000여 평의 대지 위에 사찰 내의 계곡에는 물이 흐르고 있다. 근대 정치의 한 단면을 보여준 밀실 정치의 대명사였던 3대 요정이 있는데 삼청각, 청원각, 그리고 현재 길상사로 변한 대원각이다. 대원각의 주인이었던 김영한은 법정 스님께 대원각을 시주하면서 그 대가로 달랑 염주 하나 받았다. 현 시가로 천억이 훨씬 넘는 재산이다. 김영한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백석 시인이 사랑했던 여자 김자야(金子夜)로 익히 문학사에 알려진 인물이다. 1916년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서 태어나 일찍 부친을 여의고 가정이 파산하게 되자 조선 권번(기생조합)에 들어가 정악계의 대부 하일규를 스승으로 모시고 진향(眞香)이란 기명을 받았다. 김자야는 195..

시의 밭 / 홍영수

아내는 묵정밭을 일구어 시심을 뿌려 놓았다. 햇볕 머금은 열매에서 시상을 따고 빗소리를 끌어안은 뿌리에서 주제를 캔다. 허술한 밭두둑의 행은 호미로 북돋우고 철 지나 시든 곁가지의 시구와 누렇게 된 잎의 시어는 잘라버리면서 불필요한 수식어는 꽃잎일지라도 따낸다. 벌레들이 잎사귀에 뚫어 놓은 자음의 구멍과 새들이 꽃다지에 쪼아놓은 모음의 흠집들은 떼 내고 다듬으면서 시 밭에 자란 문장을 다듬는다. 떨어뜨린 밭작물의 행간에서 의미를 다잡으며 참신한 시어와 새로운 시구의 알곡들을 줍는다. 때론, 설익은 품사의 꼭지들은 꺾어 버리고 주렁주렁 매단 열매의 단어들은 솎아주면서 갈마드는 퇴고를 하며 한 톨의 시를 수확한다. 각양각색이 상징이고 비유인 시의 밭, 그곳에서 아내의 손발 펜으로 쓴 됨새 좋은 시의 이삭들,..

나의 시 2023.04.22

유치원 어린이/홍영수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연초록 잎이다 이른 아침 풀잎에 맺혀 순수로 빛난 해울이다. 햇살 품어 반짝거리는 수정의 절정이다. 하늘도 간지럼 타는 해맑은 웃음이다. 깊은 산골에 갓 피어난 백도라지의 하얀 향이다. 내가 돌아가야 할 처음이자 마지막 고향이다. 그리고 저들은 무공해의 우주이다. -------------------------------------------------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

나의 시 2023.04.14

보령 바다는 노을로 말한다 / 황주현

처음 내게, 보령 바다는 말이 없었다. 그 먼 길을 달려와 마주한 보령 바다는 한 자락의 푸른 옷깃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파도가 섬 한 채를 풀었다가 조였다가 그러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수평선은 한 줄의 단호한 문장으로 길게 누워 있을 뿐이었다 읽어 낼 수 없는 바다의 안부 말수 적은 아버지 같았다 어둑한 저녁의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와 구석진 마당가에 빈 지게로 우두커니 서서 발 디딜 곳 없는 어둠을 부려 놓곤 했었다 어스름한 저녁의 수평선은 고단한 생의 시작과 끝을 단단하게 결박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무수히 많은 할 말들을 알아챈 건 노을이 물든 서해 바다의 막다른 골목이었다 아버지의 삶도 저토록 붉고 찬란하게 타오르고 싶었을까. 다시 잿빛으로 타다 남은 검붉은 밑불로 남아 세상의 바닥을 단 한 ..

나의 시 평론 2023.04.11

죽음, 그 너머의…

인간은 태어나 자신만의 삶의 방식대로 살다가 죽는다. 그 과정은 신체적인 조건과 기능, 장기 역할의 노후로 인한 생로병사(生老病死)일 수도 있고, 또한 예상치 못하고 갑작스러운 사고에 의해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필연적으로 인간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운명적 존재라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는 지위고하, 빈부격차, 남녀노소, 신분의 귀천과는 전혀 상관없이 평등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닥쳐오는 절대적인 운명이다. 다만, 언제 어느 순간에 찾아올지 모르는, 라나(k. Rahner)의 말처럼 “어두운 운명이요, 밤에 찾아오는 도둑”이라고 했듯이 어찌 보면, 인간이라는 생물체의 탄생 이후에 죽음에 대한 사유는 생명과 함께 가장 오래된 예술적 철학적 사유가 아닌가 한다. 서양은 죽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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