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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의 일생 / 홍영수

두 손으로 당겨보지만 바스락거리고 구겨지면서도 매끈한 생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빗장을 걸어 놓은 순결 함부로 드러낼 일 아니라는 듯 다시 한번 양 끝을 잡고 팔에 힘을 실으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감춘 샅을 연다. 찢기는 고통 잘리는 아픔 없이 어찌 한 세계를 만나랴만 그 세계 또한 새로운 세상인 것을 포장된 생의 한 겹을 벗겨내니 석류 알이 껍데기를 벌리고 나오듯 붉은 봉지의 사이와 사이에서 평생을 감추고 싶었던 수줍은 속살이 세상과 처음으로 소통한다. 생을 두고 풀지 않으려 했던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점화되지 못했던 은밀한 욕망이 조각조각 부스러지면서 끓는 열정 속에 풀리기 시작한다. ----------------------------------------------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나의 시 2023.08.09

나혜석, 금지된 것을 금지하다.

사실 예술의 역사는 남성 중심의 역사였다. 여성은 그림의 모델이나 문학작품 속 비련의 주인공 아님, 음악적 영감을 안겨주는 존재였기에 예술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없었다. 프로이트의 주장을 보면 남성보다 여성은 수동적이고 주변적인 위치에 있다고 하는가 하면 이러한 논리에 반대하는 라캉은 생물학적인 콤플렉스가 남녀 차별을 가져온 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배경에서 오는 편견과 독단에 의한 폭력적 야만적 때문이라고 했다. 여성 해방론을 들고나온 미술은, 예를 들어 바바라 크루거와 신디 셔먼 등은 그림으로 표현한 1980년대를 대표적 화가들이다. 여성문제가 폭력적인 대중매체에 훼손당한 여성의 분노를 충격적인 그림으로 담아낸다. 이들보다 다소 앞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또한 남성 중심적 사회에 대..

별이 지다 / 홍영수

https://www.youtube.com/watch?v=aS1HzDlzPNI&t=185s 서울 시청 앞 잔디광장, 이태원 참사 분향소 앞에서 나의 자작시 '별이 지다'를 낭독했다. 2023/07/29. *시민단체 '문화연대' 측에서 전화가 왔었다. (영상은 나도 모르는 어느 분이, 고마울 따름이다) 별이 지다 / 홍영수 골목선(船)이 침몰했다 비좁은 해협을 항해하다 지상의 별들이 해저의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삐쭉삐쭉 나온 불법의 어뢰들이 해로를 가로막았고 밀려든 파도와 물결의 무게는 그들을 짓눌렀다 반짝거려야 할 빛은 흔적 없이 수장되어 어둠을 밝힐 별들과 별들의 별빛이 사라졌다. 몰아치는 파도에 그들은 해안의 절벽에 부딪혔고 맴돌이 해류에 휩쓸린 일엽편주가 되어 사납게 놀치는 골목의 해협에서 자취를 감..

詩적인 삶을 위해 리듬을 갖자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기만의 특별한 활동, 자기만의 리듬을 갖고 살아간다. 그 활동이나 리듬이라는 게 취미활동, 또는 추구하고자 하는 그 무엇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등산, 낚시, 여행, 독서 등 수많은 분야가 있다. 이렇듯 정해진 테두리, 즉 회사나, 집 등의 고정된 카테고리를 벗어나 자기만의 휴식과 에너지 충전, 더욱더 나은 삶의 질을 추구하고 노력해야 할 이유가 바로 삶의 리듬을 갖는 게 아닐까. 삶의 리듬을 위해서는 틀에 박힌 일상을 탈출해야 한다. 그리고 타성에 젖은 네모 상자를 깨뜨려야 한다. 이러한 것이야말로 매일매일 억눌리고 틀에 박힌 삶에서 탈출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것은 시나 음악처럼 운율이 있는 리듬감을 찾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기 위해서는 나를 감싸고 있는 고정된 그물을 찢고..

전통 가락에 흐르는 恨과 멋 -심호(心湖) 이동주론

전통 가락에 흐르는 恨과 멋 -심호(心湖) 이동주론 문학평론, 홍영수, 2021. 심호(心湖) 이동주(1920~1979)는 땅끝 해남(海南) 태생으로 해방 후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서정시인이다. 혜화전문(惠化專門) 2년을 중퇴하고 1950년「문예(文藝)」지에 「새댁」과 「혼야(婚夜)」가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한다. 첫 시집「혼야」을 1951년에, 1959년에 두 번째 시집「강강술래」을 출간한다. 그가 작고한 1979년까지 총 4권의 시집을 발간하였고 시력(詩歷) 30여 년에 150여 편을 썼으며, 시선집에 『산조(散調)』(1979), 유고 시집 『산조여록(散調余錄)』과 시선집『이동주 시집』(1987) 등이 있으며, 수필집『그 두려운 영원에서』등 1백여 편의 수필과『문인실명 소설집(文人實名小說集)』등 여러 편..

나의 雜論直說 2023.07.20

시 모음, <담장>

https://blog.naver.com/edusang/222607537989 시 모음 192. 「담장」 담장에 관한 시 차례 돌담 / 복효근 돌담 / 홍영수 돌각담 / 곽재구 돌담길 / 황동규 세월의 담장 / 강연호... blog.naver.com 돌담 - 홍영수 나는 너를 지고 너는 나를 이고 너는 나를 안고 나는 너를 베고 생김새도 크기도 다른 것들이 모둠 살이 하며 담장 하나 이루었다 나보다는 너에게 너에게 나를 맞추니 숭숭한 구멍들 사이로 바람이 배시시 웃으며 길인 듯 스쳐 간다. 돌담을 담으로 지금껏 서 있게 한 사이와 사이의 기둥 같은 숨구멍들 허투루한 틈바구니 열린 마음 하나 담이 되어 서 있다.

나의 雜論直說 2023.07.19

미음완보微吟緩步, 사색의 숲길을 거닐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에서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고 했다. 자연 속에서 물리적으로는 갈대처럼 한없이 작고 약한 존재이지만, 생각하는 존재로서 인간은 모든 걸 수용하고 포옹할 수 있는 실존적 인간이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간은 태풍이든 미풍이든 이리저리 휩쓸리고 눕다가 일어서고 일어섰다가 다시 눕고 나부끼면서 생각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명종 소리에 깨어나 출근하고 때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매일 반복 되는 시계추 같은 삶, 이렇게 패턴화된 기계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바로 현대인의 모습이다. 또한, 생각과 사색 속에 자신을 관조하기보다는 손에 쥔 핸드폰이나 컴퓨터 등에 모든 시선을 집중하..

별이 지다/홍영수

골목선(船)이 침몰했다 비좁은 해협을 항해하다 지상의 별들이 해저의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삐쭉삐쭉 나온 불법의 어뢰들이 해로를 가로막았고 밀려든 파도와 물결의 무게는 그들을 짓눌렀다 반짝거려야 할 빛은 흔적 없이 수장되어 어둠을 밝힐 별들과 별들의 별빛이 사라졌다. 몰아치는 파도에 그들은 해안의 절벽에 부딪혔고 맴돌이 해류에 휩쓸린 일엽편주가 되어 사납게 놀치는 골목의 해협에서 자취를 감췄다. 해수면에 떠도는 부유물은 가족의 안부로 떠돌았고 거센 풍랑에 찢긴 신발은 갈 곳을 잃고 표류했다. 사방을 봐도 항로가 막혀버린 아포리아의 절망 앞에 해미의 항해 속 죽살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후밋길 해로에서 무적霧笛을 울렸고 이물과 고물에서 조난의 구조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이 태평스러운 원님들인 선장과 ..

나의 시 2023.07.12

풍경風磬 2/홍영수

절간에 입적한 물고기가 고요 한 잎 물고 허공에 매달렸다 바람이 분다. 고요가 깨어나며 정적의 바다에 파문을 일으킨다. 바람은 고요를 깨울 생각이 없고 고요 또한 바람을 맞이할 생각이 없다 대지와 초목의 숨소리에 뎅그렁거린 한 울림의 풍경소리 들리는 것은 소리일 뿐 마음은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해 더 잘 알 수 있는 무념무상의 소리 졸음 겨운 사미승이 두 눈을 부릅뜨고 조용했던 사바의 세계도 참선한다. 깨어난 적막의 귓전에 불경 소리 스며든다. 혼자 우는 아픔은 상처의 깊이를 느끼지 못한다. 비워서 넘치는 소리가 울림이 되어 세상에 매달려 있다. -------------------------------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

나의 시 2023.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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